국제
시민사회의 위기와 NGO의 제자리 찾기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1. 체계에 포섭된 생활세계의 위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국가권력이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던 시대를 지나, 1987년 민주화운동을 분기점으로 시민들의 자발적 연대와 희생 속에서 성장해왔다. 그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NGO는 단순한 사회운동 조직을 넘어 민주공화국을 떠받치는 핵심 축으로 기능하였다. 군부 권위주의 시절 시민사회는 억압된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자유·인권·정의·참여의 가치를 사회 전면에 제기했다. 거리의 작은 모임과 지역 공동체, 노동·환경·인권 운동은 국가권력의 자의성을 견제하며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적 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시민사회는 과거와는 다른 성격의 위기를 맞고 있다. 과거의 위기가 외부 권력에 의한 직접적 억압이었다면, 현재의 위기는 훨씬 은밀하고 구조적이다. 지구화, 정보화, 후기산업화, 탈물질주의, 탈냉전 질서로 대표되는 21세기 전환기의 변화 속에서 사회는 점차 파편화·원자화되고 있으며, 시민사회 역시 국가와 시장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포섭되면서 자율성과 비판 정신을 잃어가고 있다. 다시 말해, 시민사회가 본래 지켜야 할 ‘생활세계’가 권력과 자본의 논리에 의해 잠식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NGO들이 권력 감시와 시민 대변이라는 본래의 역할보다 정부 사업 수행과 정치적 진영 논리에 더욱 깊이 결합되면서, 시민사회는 독립적 공론장으로서의 성격을 점차 상실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특정 진영의 정치적 논리를 대변하거나 정치적 양극화를 강화하는 데 가담한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이는 시민사회가 공공성과 중립성을 기반으로 사회적 신뢰를 형성해왔던 본래의 정체성과 충돌한다. 원래 NGO는 비정부기구(Non-Governmental Organization)를 뜻한다. 말 그대로 정부가 아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민간 결사체이다. 흔히 함께 사용되는 NPO(Non-Profit Organization)는 비영리성을 강조한 개념이다. 그러나 NGO의 핵심 원칙 가운데 종종 간과되는 것이 바로 비정파성(Non-Partisanship)이다. 비정파성이란 특정 정파나 정치 세력에 종속되거나 편향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NGO 활동가 개인이 정치에 참여하거나 정당에 가입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특정 NGO가 조직 차원에서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거나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는 것은 시민사회 본연의 성격을 훼손할 위험이 크다. 실제로 많은 시민단체들이 정치인의 일반 회원가입은 허용하더라도 대표·이사·감사와 같은 핵심 직책을 맡는 데에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왔다. 이는 NGO의 비정파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비정파성은 단순한 형식적 원칙이 아니라, 시민단체를 관변단체와 구별 짓는 본질적 기준이기 때문이다. 특정 권력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순간 시민사회는 독립성을 상실하고, 시민 전체의 공공적 이익보다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를 우선시하게 될 위험에 놓인다. 이러한 변화는 1997년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정부가 NGO를 직접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비정부성’의 경계가 점차 흐려졌다.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시민단체들은 공공재단이나 공익기금의 지원을 받는다. 그러나 대체로 그러한 재단은 의회 산하이거나 정부로부터 독립된 이사회에 의해 운영된다. 반면 한국에서는 정부의 직접 지원 비중이 커지면서 NGO와 정부 사이의 긴장 관계가 약화되었고, 일부 시민단체는 행정 체계의 연장선처럼 기능하게 되었다. 비정파성의 약화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 2000년 총선연대 활동은 매우 정치적 성격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정당을 지지하기보다는 시민적 감시와 정치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비정파성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후 일부 NGO들은 점차 특정 정치세력과 동일한 입장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본래 NGO는 단일한 거대담론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다원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조직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시민사회 스스로가 정권교체나 민주화라는 거대 진영담론 속으로 편입되면서, 시민의 다양한 삶의 요구보다 조직과 단체의 생존을 위해 정치적 진영논리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정부가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이나 각종 거버넌스 체계에 참여한 시민단체 활동가들 가운데 일부는, 민관협치라는 이름 아래 국가권력과 지나치게 밀착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시민사회가 행정 권력의 협력 파트너를 넘어 ‘생계형 어공’ 혹은 ‘생계형 계몽가’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이러한 조직들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핵심 기반인 주민자치회와 갈등을 빚으며 시민적 자율성을 약화시킨 사례도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코헨과 아라토(Cohen & Arato)가 『시민사회와 정치이론(Civil Society and Political Theory)』에서 말한 ‘자기제한적 급진주의(self-limiting radicalism)’와 ‘영향력의 정치(politics of influence)’의 정신과도 거리가 멀다. 이들이 강조한 시민사회란 국가권력을 직접 장악하려 하기보다, 독립적 지위를 유지한 채 국가와 시장을 견제하며 시민의 자유 공간인 생활세계를 방어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시민사회는 오히려 국가와 시장 체계 내부로 편입되면서 그 비판적 기능을 약화시키고 있다. 시민사회의 위기는 단순한 조직 운영상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공화국의 근간인 시민적 자율성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다. 독일의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현대 사회에서 시장과 국가권력이 시민들의 자율적 삶의 공간인 ‘생활세계(Lifeworld)’를 식민화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생활세계란 가족, 공동체, 일상적 소통, 상호 신뢰, 시민적 연대가 살아 움직이는 삶의 기반을 의미한다. 시민들은 이 공간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공동의 규범을 형성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돈과 권력의 논리는 이러한 생활세계를 지속적으로 침식한다. 인간관계는 경쟁논리로 환원되고, 시민의 삶은 행정적 관리 대상으로 전락하며, 공동체는 효율성과 성과 중심의 체계 속에서 해체된다. 한국 사회의 시민단체들 역시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점차 국가 보조금 체계와 정치권력의 이해관계에 종속되어 갔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연대보다는 행정 사업 수행능력이 조직의 생존을 좌우하게 되었고, 공공성보다 정치적 유불리가 우선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나타났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NGO가 시민과 정부 권력 사이의 중재자가 아니라, 오히려 권력의 메시지를 시민에게 전달하는 행정적 하부기관처럼 기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과거 시민사회의 힘은 국가와 일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시민들의 삶과 고통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NGO는 시민의 삶보다 제도권 정치와의 관계 유지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으며, 이는 시민사회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민사회가 생활세계의 토대를 상실한다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의 심장이 약화된다는 뜻이다. 민주공화국은 단지 선거를 통해 정부를 구성하는 체제가 아니다. 그것은 시민들이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며 공적 삶을 함께 만들어가는 정치 공동체이다. 시민사회가 권력과 시장의 하부 체계로 전락할 때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고 실질적 생명력을 잃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히 “왜 NGO가 신뢰를 잃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시민의 삶과 자율성을 회복할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이어야 한다. 2. ‘비지배적 자유’와 생활세계의 복원 민주공화국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유의 개념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현대 자유주의는 대체로 자유를 ‘간섭받지 않는 상태’로 이해해왔다. 그러나 공화주의 전통에서 자유는 단순한 비간섭 상태를 넘어선다. 공화주의가 강조하는 핵심 개념은 바로 ‘비지배적 자유(Non-domination)’이다. 비지배적 자유란 타인의 자의적 권력 아래 놓이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설령 현실적으로 간섭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자신의 삶이 좌우될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철학자 필립 페팃(Philip Pettit)은 이러한 자유를 “타인의 자비에 의존하지 않고도 고개를 들고 살아갈 수 있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자유란 단지 간섭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 독립적 시민의 지위를 뜻한다. 현대 사회에서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지배는 과거처럼 노골적인 형태만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늘날의 지배는 훨씬 더 미세하고 구조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거대 플랫폼 기업의 알고리즘은 시민들의 정보 접근과 여론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자본 권력은 노동자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들며, 국가 행정은 시민을 관리 가능한 데이터와 통계의 대상으로 환원시킨다. 직장 내 갑질, 비정규직 노동의 확대, 디지털 감시, 과도한 행정 통제와 같은 현상들은 모두 현대 사회의 새로운 지배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사회가 수행해야 할 역할은 단순한 복지서비스 제공이나 정책협조에 머물 수 없다. 시민사회는 국가와 시장 권력이 시민의 삶을 자의적으로 지배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공화주의적 방파제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시민들이 누구의 시혜나 허락에 의존하지 않고 존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생활세계를 보호하고 복원하는 것이 시민사회의 핵심 사명이다. 여기서 말하는 생활세계의 복원은 단순히 과거 공동체 사회로의 회귀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삶이 시장 가치와 행정 효율성만으로 평가되지 않는 사회를 회복하는 일이다. 시민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공동의 문제를 토론하며, 자발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공간을 확대하는 것, 바로 그것이 민주주의의 실질적 토대를 강화하는 길이다. 예컨대 지역 공동체 운동, 협동조합, 주민자치 활동, 마을교육공동체, 생활환경운동 등은 생활세계 복원의 중요한 실천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은 시민을 단순한 정책 수혜자나 소비자가 아니라 공적 삶의 능동적 주체로 세운다. 시민들은 이 과정에서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공공선을 함께 형성하는 경험을 축적하게 된다. NGO의 존재 이유 역시 여기에 있어야 한다. NGO는 특정 정권의 정책을 홍보하거나 특정 진영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이 아니라, 시민들의 자율적 삶과 연대를 지키는 공론장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시민사회는 국가권력을 대체하는 또 다른 권력이 아니라, 권력이 시민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민주공화국의 안전장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생활세계의 복원’이 지향하는 사회의 의미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통찰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활동을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로 구분하였다. 이 구분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실을 꿰뚫는 중요한 해석 틀이 된다. 오늘날 우리는 철저히 “in order to(무엇을 하기 위한)”의 논리가 지배하는 작업(work)의 세계 속에 살아가고 있다. 교육은 취업을 위해 존재하고, 정치는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움직이며, 정책은 성과와 효율을 위해 설계된다. 사회의 거의 모든 질문은 결국 “그래서 어디에 쓸 것인가?”라는 목적론적 사고로 귀결된다. 인간의 삶과 행위는 끊임없이 외부 목적에 종속되고, 존재의 의미조차 효율과 활용 가능성에 의해 평가된다. 아렌트가 말한 작업(work)은 본래 인간이 세계를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활동이다. 집은 거주를 위해 짓고, 제도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수단적 논리가 사회 전체를 지배할 때 발생한다. 인간은 더 이상 세계를 함께 열어가는 정치적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해야 하는 제작자이자 기능적 자원으로 축소된다.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보다 ‘어디에 쓰이는가’로 평가받게 된다. 반면 아렌트가 말한 행위(action)는 “for the sake of(그 자체를 위해)”의 세계에 속한다. 정의를 말하는 것은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의 그 자체를 추구하기 위해서이며, 공적 발언은 결과 때문이 아니라 공동세계(공적영역)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타인과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행위는 인간이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서로 대화하고 토론하며 공동의 세계를 열어가는 정치적 실천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행위의 영역은 점점 축소되고 있다. 시민들은 다양성을 드러내기보다 계산하고, 토론하기보다 관리하며, 공공선을 논의하기보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진다. 시민들의 참여는 점차 줄어들고, 그 자리를 여론조사와 데이터 분석이 대신하고 있다. 시민은 더 이상 말하고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분석되고 관리되는 대상으로 취급된다. 시민사회의 활동조차 공동세계를 위한 공적 행위가 아니라 권력과 영향력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적 작업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결국 오늘의 한국 사회는 생존을 위한 노동은 과잉되고, 성과를 위한 작업은 지배적이며, 자유로운 시민적 행위는 빈약해진 사회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바쁘게 살아가지만, 정작 함께 세계를 열면서 공공의 의미를 공유하는 경험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결과 효율은 높아질지 모르지만 삶은 점차 공허해진다. 이런 점에서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단순히 더 많은 성장이나 더 효율적인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in order to”의 논리를 넘어, “for the sake of”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바라보고, 시민들이 함께 말하고 행동하며 공동의 삶을 열어가는 생활세계를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민주공화국을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다. 3. 건강한 NGO-정부 관계 설정과 긴장 민주공화국에서 정부와 시민사회는 본질적으로 적대적 관계일 필요는 없다. 국가와 NGO는 공공 문제 해결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공유할 수 있으며, 복지·환경·인권·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협력 또한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협력 그 자체가 아니라, 협력이 종속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사회는 국가와 협력할 수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독립성 역시 유지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 시민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NGO와 정부 사이의 건강한 긴장 관계가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많은 시민단체들이 정부 지원금과 공공 위탁 사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서 재정적·정치적 독립성을 잃어갔고, 이는 곧 권력 비판 기능의 약화로 이어졌다. 권력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시민사회의 언어는 점차 행정 용어로 대체되었고, 시민들의 생생한 삶의 목소리는 통계와 보고서 속 수치로 환원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하버마스가 지적한 ‘생활세계의 식민화’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행정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효율성과 관리 가능성을 중시한다. 그러나 시민의 삶은 숫자와 규정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인간적인 영역이다. 시민사회의 본래 역할은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즉, 국가와 시장의 시스템 논리가 놓치고 있는 인간적 삶의 차원, 공동체적 가치, 시민의 존엄과 관계성을 복원하는 데 있다. 예컨대 복지정책이 행정 효율성만을 강조할 경우, 수혜자는 하나의 관리 대상이나 행정 단위로 전락하기 쉽다. 하지만 시민사회는 그 사람의 존엄과 삶의 맥락, 공동체적 관계를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노동 정책 역시 단순한 고용 통계나 생산성 지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삶의 질, 인간다운 노동 조건, 공동체적 안정감까지 포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시민사회는 바로 이러한 ‘생활세계의 언어’를 공적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NGO와 정부의 관계는 ‘협력 속의 긴장’이어야 한다. NGO는 정부 정책을 무조건 반대하는 세력이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정부 정책의 하청 수행기관이나 정치적 우군으로 기능해서도 안 된다. 민주공화국에서 시민사회는 정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비판적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긴장 관계야말로 건강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핵심 조건이다. 특히 NGO가 정치권력과 지나치게 밀착할 경우 시민사회 전체가 진영논리에 갇히게 된다. 공익보다 정치적 충성도가 우선되는 순간 시민사회는 도덕적 권위를 상실한다. 시민들은 NGO를 더 이상 공공의 대변자가 아니라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를 대변하는 집단으로 인식하게 되고, 이는 시민운동 전반에 대한 냉소와 불신으로 이어진다. 시민사회가 권력을 견제하는 독립적 공간이 아니라 권력의 연장선으로 보이기 시작할 때, 민주주의의 균형추 역시 무너지게 된다. 건강한 시민사회는 권력의 주변이 아니라 시민의 삶 가까이에 존재해야 한다.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다수의 효율성 논리 속에서 배제된 이들의 존엄을 지켜내는 것이 NGO의 존재 이유다. 시민사회는 ‘관리되지 않는 삶’, ‘수치화되지 않는 고통’, ‘대표되지 못한 목소리’를 공론장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정적 독립성과 조직 내부의 윤리성이다. 시민의 자발적 후원과 참여를 기반으로 한 NGO만이 권력 앞에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 시민으로부터 힘을 얻지 못하는 시민사회는 결국 국가권력이나 자본 권력에 의존하게 되며, 그 순간 비판 기능은 약화된다. 결국 공화주의적 시민사회란 국가를 대체하는 또 다른 권력이 아니라, 시민 스스로가 민주주의의 주인으로 서도록 만드는 자율적 공론장의 구조를 의미한다. 진정한 시민사회는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공공 문제 해결에 기여하면서도, 동시에 권력의 자의성과 시스템의 획일성을 끊임없이 경계하는 존재여야 한다. 다시 말해 시민사회는 국가와 시장 사이에서 시민의 생활세계를 보호하고, 비지배적 자유를 지켜내는 민주공화국의 마지막 안전장치가 되어야 한다. 4. 미래형 시민운동의 지향점 오늘날 한국 시민사회가 직면한 위기는 단순한 조직 운영의 실패나 일시적 신뢰 하락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공화국의 핵심 가치인 시민적 자율성과 공공성이 흔들리고 있는 구조적 위기이다. 따라서 NGO의 제자리 찾기는 단순한 이미지 개선이나 제도 개편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민사회 전체의 존재 이유와 역할을 다시 묻는 근본적인 성찰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첫 번째 과제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 회복이다. 시민사회는 특정 정권이나 정치세력의 부속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동일한 기준으로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하며, 오직 공익과 시민의 삶이라는 원칙 위에서 행동해야 한다. 이를 위해 NGO내부에는 엄격한 윤리기준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제3섹터로서 시민단체는 NPO와 NGO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NGO는 더 이상 진영논리를 부추기며 정치적 양극화를 재생산하는 정치권의 하위 파트너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민사회는 정치적 동원과 정부 보조금 의존 구조에서 벗어나 공공성과 시민적 책무성을 회복해야 한다. 또한 적대와 증오, 배제와 진영 대립을 확대하는 정치문화에 편승하기보다, 오히려 이를 견제하고 완화하는 사회적 완충지대로 기능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비정부기구라는 이름에 담긴 본래의 정신이며, 민주공화국에서 시민사회가 수행해야 할 역사적 역할이다. 두 번째 과제는 시민사회의 도덕적 권위를 회복하는 일이다. 오늘날 시민들은 단지 정의로운 구호를 외치는 조직이 아니라, 실제로 투명하고 책임 있게 운영되는 조직을 원한다. 시민사회가 공공성을 말하려면 먼저 스스로 공공적이어야 한다. 조직 운영과 재정 집행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내부 권력 남용과 도덕적 해이를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 이른바 ‘유리방 경영’ 수준의 공개성과 책임성이 확보될 때 비로소 시민사회는 시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도덕적 권위 없는 시민운동은 결국 또 하나의 이해집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세 번째 과제는 시민운동의 방향 전환이다. 이제 시민운동은 거대 이념 중심의 정치운동에서 벗어나 생활 밀착형 공공성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후 위기, 돌봄 문제, 평화적 공존문제, 노동 불안, 청년 세대의 고립, 지역 소멸, 디지털 플랫폼 권력과 같은 문제들은 시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시민들은 더 이상 추상적 이념이나 진영 중심의 정치 구호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연대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미래형 시민운동은 이념적 적대와 진영 논리를 넘어 시민의 존엄과 공동체 회복이라는 보편적 가치 위에 서야 한다. 그것은 국가를 무조건 불신하는 운동도 아니고, 반대로 국가권력에 종속되는 운동도 아니다. 오히려 시민의 삶과 공권력 사이를 연결하는 건강한 공론장을 형성하고, 민주주의의 균형추 역할을 수행하는 공화주의적 연대 운동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시민사회는 갈등을 증폭시키는 진영의 전위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삶과 의견이 공존할 수 있도록 사회적 신뢰와 공공성을 복원하는 매개 공간이 되어야 한다. 결국 민주공화국의 힘은 국가권력의 강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건강함에서 나온다. 시민들이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누구의 자의적 지배에도 예속되지 않으며, 권력과 자본이 인간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못하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민주공화국이다. NGO의 제자리 찾기는 바로 이러한 민주공화국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시민사회가 다시 시민의 삶 속으로 돌아가 생활세계를 복원하고, 비지배적 자유를 수호하는 공화주의적 연대의 중심에 설 때, 한국 민주주의는 단순한 제도적 민주주의를 넘어 성숙한 시민공화국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