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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다카이치 정권과 한일관계의 변화, 우리의 전략

 진창수(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일본정치의 변화: 소수 여당 다카이치 정권의 탄생

일본 헌정사상 처음으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자민당 총재가 여성 총리로 선출되었다. 남성 중심의 정치계에서 여성이 총리가 된 것은 일본정치에서 그 의미는 크다. 또한 26년만에 자공연립이 해체되고 자민당과 일본유신회(약칭은 유신회)의 연립정권 출범은 일본정치의 변화를 보여준다.

다카이치정권은 자민당과 유신회가 연립하였지만, 국회에서 과반수를 하지 못해 소수 여당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자공(自公) 연립정권의 해체로 인해 자민당이 장기적으로 권력을 독점하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지난 10월 10일 일본 공명당은 자민당과의 연립정권에서 이탈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99년 체제’로 불리는 자공(自公) 연립체제는 이제 역사적 종언을 맞이하게 되었다. 1955년에 결성된 자민당과 사회당이 대립했던 체제를 ‘55년 체제’라고 부른다면, ‘99년 체제’는 지난 26년간 자민당과 공명당이 맺어온 연립체제를 일컫는 말이다. 다카이치 정권이 성립하면서 공명당이 연립정권에서 이탈한 것은 1999년 자민당이 만든 연립체제를 근본적으로 붕괴시킨 점에서 그 정치적 파장은 크다.

자공 연립정권의 붕괴로 일본 정치는 어느 정당도 단독으로 정권을 담당할 수 없는 다당화 시대에 들어섰다. 다카이치 정권이 유신회와 연립을 하더라도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한 소수 여당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다당화 국가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소수 여당이 집권하면서 정당간 연립에 따라 정권이 유동화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정계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현재 중의원의 465석 중 과반수는 233석이다. 중의원 세력 구도를 보면, 196석의 자민당, 148석의 입헌민주당· 35석의 일본유신회· 27석의 국민민주당 등이 존재한다. 자민당이 입헌민주당과 연립하지 않는 한 의회 과반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 결과 추진하려는 법안을 중·참 양원에서 통과시키기 어려우며, 정권의 안정성도 보장할 수 없게 되었다. 야당이 연합을 하면 정권 교체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정권 교체는 일어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야당인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은 원전 정책, 안보, 헌법 등 주요 정책에서 입장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본정치는 여야 어느 쪽도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는 다당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다당화 시대의 일본정치는 자민당 시대와 달리 정국이 유동화되고 안정성이 담보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국내적 과제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내 대표적인 우파(右派) 인사로, 안보·헌법 개정 논의에도 적극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직전에는 매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이러한 행동은 역사 인식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앞으로 자민당의 정책 방향은 더 오른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다. “보수 본류”라 불리던 온건파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그 빈자리를 강경 보수 세력이 채워가는 형국이다. 자민·유신의 연립 합의문에는 외교·안보 관련 3문서 개정을 비롯해, 방위력 강화와 적극 재정 추진이 명시되었다. 강경한 외교·안보 정책과 더불어, 외국인 정책에서도 매파적(강경 보수) 색깔이 뚜렷하다. “공명당”이라는 제어 장치가 빠진 상태에서, 자민당이 일본유신회와 손잡음으로써 “우경화”가 한층 뚜렷해졌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가 자신의 보수적 색깔을 명확히 내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정치에서 야당과 타협을 하지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베 전총리와 마찬가지로 경제에서 지지를 회복하려는 자세는 강하다. 다카이치 총리는 10월 21일 밤 총리 취임 기자회견에서 “결단과 전진의 내각”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물가대책과 경제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강한 일본 경제를 만들고, 외교·안보에서 일본의 국익을 지켜내겠다”고 말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우선 과제는 물가 상승 대응을 포함한 2025년도 보정예산안을 편성하는 것이다. 자민당과 유신이 20일 체결한 연립정권 합의문에는 휘발유세 감면과 고교 무상화가 명기되었다. 시장에서는 새 정권이 적극적 재정을 지향하며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사회보장 정책도 큰 과제다. 유신의 요구에 따라 현역 세대의 사회보험료 부담을 줄이는 개혁에 착수할 방침이다. 다만 자민당이 일본의사협회 등의 반발을 무릅쓸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다카이치 정권은 여소야대(與小野大)로 출발하기 때문에 법안 심의나 예산 통과하기 위해서는 야당의 협력을 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만약 야당측이 결집한다면 정국은 더욱 혼미해질 것이다. 게다가 내각불신임안 등으로 쉽게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우선 연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역시, 야당이 협력하지 않으면 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여야간 조율에 시간이 걸리면 일정이 촉박해져 다른 법안들은 통과가 어려워진다. 즉 정책이 지연되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이번 가을 임시국회에서 다카이치 정권이 교착상태에 빠질 위험조차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권을 잡은 총리는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 실시라는 선택지가 벌써부터 떠오르고 있다. 자민당에서는 연초 예산 통과후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를 단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치와 돈’ 문제로 신뢰를 잃은 자민당이 과반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앞으로 소선거구에서 공명당의 조직표를 잃게 되어 의석수가 줄어들 가능성은 있다. 게다가 연립정권 해소의 여파로 기존의 조직 동원력도 약화되고 있다. 다만 다카이치 총리는 잃어버렸던 보수지지층을 흡수하여 다시 자민당의 의석수를 늘일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선거로 자민당이 지지세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 지금으로써는 미지수이다

 

외교적 과제

외교 분야에서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신임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0월 28일 정상회담에 관심이 모아젔다. 이번 미일 정상회담은 다카이치 총리로서는 처음 대면한 트럼프 대통령과 신뢰 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외교적 시험 무대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사전 대비와 함께 국내적으로는 경제적인 성과를 어필해야 하는 정치 무대였다. 미일 정상의 다른 의도는, ‘강한 동맹의 재확인’을 통해 서로 윈윈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우선, 트럼프 대통령과의 신뢰 관계를 통해 강력한 미일동맹을 어필하고자 했다. 다카이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강한 일본 외교’를 부활시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미일동맹의 새로운 황금시대’를 만들기 위해 ‘아베 총리의 후계자’임을 끊임없이 강조해 트럼프의 마음을 얻으려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아베 전 총리로부터 다카이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회상하며 "당신은 위대한 총리가 될 것이다"라고 화답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예우가 아니라, 트럼프가 다카이치를 중요한 대화 상대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정상회담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게다가, 일본은 미국의 요구를 선제적으로 충족시켜 트럼프가 만족할 만한 회담으로 만들었다. 회담 서두에 다카이치는 "미일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동맹이 됐다. 일본도 함께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더는 미국의 ‘방어적 파트너’에 머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를 위해 방위비를 GDP의 ‘2% 이상’ 연내 증액을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 이후 동맹국들에 계속 요구해 온 ‘비용 분담 강화’에 부합하는 조치다. 그리고 미국이 중국의 군사력 증강을 경계하는 것에 대한 화답이기도 하다.

 또한, 미일 간 관세 합의의 구체적인 이행 상황도 마련했다. 그전에 미일 양국 정부는 5500억 달러(약 80조 엔) 규모의 대미 투자·융자 계획을 확정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일본 정부는 트럼프와 경제인들의 만찬을 주선하면서 실질적인 진행을 담보하도록 성의를 보였다. 에너지, 인공지능(AI), 핵심 광물 등 분야의 구체적 사업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킨 것이다. 공급망 리스크를 분산시킨다는 데도 합의했다. 이는 단순한 무역 관계를 넘어선 ‘산업 기반의 동맹 모델’을 지향한 것이다.

첫 시험대인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다카이치 총리는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렇지만, 미국을 등에 입고 보수화된 외교정책을 펼치면 그만큼 국제관계에서 갈등의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도 과제이다.

 

일본 정국의 변화와 한일관계

일본의 정권이 불안정하면 한일관계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상대가 국내정치에 매몰되어 소극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의 후계자라는 인식이 강해 한국이 원하는 과거사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국내의 보수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한국을 자극할 수 있는 위험성마저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우려하는 야스쿠니 신사에 다카이치 총리가 참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고 국내정치에서 야당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야스쿠니 참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총리와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정권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보수적 색깔보다 경제정책에 치중할 가능성이 높다. 물가대책이나 경제정책에서 지지율을 올리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인식할 것이다. 그리고 국제관계에서도 한미일협력을 중시할 가능성이 높다. 아베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일본도 미국의 요구에 대응하여 일본의 군비 증강과 ‘안보 관련 3문서’의 개정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일본이 급격히 급격히 군비를 증강하는 것은 예산과 맞물려 무리가 있다. 그리고 다카이치총리의 평소 소신대로라면 역사인식문제, 독도문제 등으로 한국내 반일 정서를 자극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의도되지 않는 돌출사건에서 한일 감정 대립을 부추길 수 있다. 일본 정치권은 더욱더 우경화되고, 한국 시민세력의 일본에 대한 불만은 여전히 존재하여 갈등의 씨앗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일관계가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한일협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또한 일본 정치권도 트럼프 시기에 한일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컨센서스를 갖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일정책에서 실용외교를 실현하면서 한일관계를 안정적으로 이끈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다카이치 총리는 이전의 자세와는 달리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상호이해와 이익이 맞닿는 지점을 확장하기 위한 전략적 자세를 취할 것은 분명하다. 10월 30일 한일정상회담에서도 다카이치 총리가 "안보·경제·사회 분야에서 폭넓은 관계를 갖길 희망한다"고 하면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만들자’고 말한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한국은 부정적인 상황을 관리하면서 전략적 협력을 확대하여 서로 윈윈(Win Win)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일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 윈윈할 수 있는 협력관계, 그리고 국제관계에서의 전략 파트너’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