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운찬 (사)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전 국무총리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 및 군사적 긴장은 매우 엄중합니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대남 차단, 대미 직통’의 길로 나아가는 현상은 단순한 전술 변화 이상의 중장기적 전략 변화를 나타냅니다. 여기에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는 대외적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세적 외교 전술과 강대국의 패권주의가 맞물린 상황에서 자강적인 평화 로드맵이 없다면 한반도의 운명은 외풍에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통일이란 단순한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며, 남과 북이 함께 만들어가는 숭고한 과정입니다. 결과만 강조하는 급진적인 통일은 극심한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큽니다. 비록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를 표방하더라도 우리는 이를 '통일 지향의 평화적 두 국가' 관계로 관리하며 포용하는 거시적 안목을 지녀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가 2026년을 '한반도 평화공존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한반도 평화 특사 임명을 추진하는 것은 시의적절한 정책적 결단입니다.

이러한 평화공존 실천의 핵심은 바로 '동반성장'입니다. 즉, 통일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는’ 동반성장이고, 이는 경제 영역을 넘어 동북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유력한 수단이자 목표입니다. 남북한 경제는 상호 협력 속에서 함께 발전해야 합니다. 남북 간 경제 협력을 통한 상호 신뢰 자본의 축적만이 대결의 장벽을 허물 수 있는 확실한 기제입니다. 동반성장형 남북경협을 추진하여 통일 한반도의 지속 가능한 경제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평화경제특구, 동반성장의 새로운 교두보
우리는 과거 개성공단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더욱 창의적인 접근을 도모해야 합니다. 정부가 제시한 '평화경제특구' 조성과 '신 평화교역 시스템' 구축은 정경분리의 원칙을 실현할 구체적 방안입니다.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토지와 인력을 결합하되, 이를 국제적 신용 체계 아래에서 교류하는 방식은 대북 제재라는 제약 조건 속에서도 남북이 상생할 수 있는 최적의 경제적 해법입니다. 이와 같이 남북이 함께 이익을 만들어내는 경제 공동체 모델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설계해야 합니다.
특히 남한의 자본 및 현대적 채굴 장비가 북한의 지하자원 개발에 투입된다면, 북한의 지하자원 생산량은 지금보다 3배로 증대하여 남북 모두에 이익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촘촘하고 굳건한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형성될 때, 한반도 내 군사적 긴장과 전쟁의 위협은 현저히 줄어들 것입니다.
한국 내부의 동반성장이 우선되어야 한다
성공적인 남북경협과 통일을 위해서는 남한 내부의 양극화 완화와 동반성장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진정으로 추구할 만한 공정한 경제 생태계가 남한 내에 먼저 존재해야 상호 동의와 협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남한 내부의 양극화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발적인 통일을 맞이한다면, 이는 곧 사회 혼란과 경제 붕괴로 이어질 위험이 큽니다.

따라서 경쟁의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고 승자독식 구조를 개선하여, 우리 사회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동반성장 생태계로 전환해야 합니다. 정부가 통일교육의 패러다임을 자유·안보’ 중심에서 ‘평화·통일·민주시민 참여’형으로 전환하여 내부적 합의 기반을 다지는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합니다. 아울러 실질적인 남북경협을 통해 남북한 경제력 격차를 완화해 나가는 것은 향후 발생할 통일 비용을 대체하면서 편익을 얻는 가장 확실한 보증입니다. 북한 경제의 자생력을 높이는 지원은 ‘퍼주기’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위한 ‘평화비용’이자 ‘투자’로 보아야 합니다.

민간 교류와 다자간 협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평화는 찰나에 도달할 수 있는 종착지가 아닙니다. 남북의 경제적 격차 해소를 목표로 하는 남북경협과 인도적 차원의 교류 협력은 정치 상황이나 지정학적 변화에도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합니다. 민간의 신뢰 위에서 불확실성을 제어하기 위한 정책적 선택들이 쉼 없이 축적되어 가는 역동적인 과정입니다. 정부가 ‘한반도 평화특사’ 임명을 추진하고 북미대화 재개를 추동하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자임한 것 역시, 단절된 외교 채널을 넘어 한반도 전체의 삶을 보듬으려는 실천적 중재 의지의 발로라 할 수 있습니다.

정부 간 공식 채널이 경색될수록, 한국자유총연맹과 같은 시민사회 단체가 보수적 가치를 뛰어 넘어 ‘평화의 외연 확장’에 나서고 민간 평화 외교의 주역으로 활약하여 끊어진 대화의 맥을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기를 기대합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반도는 동북아 경제의 심장부로 도약해야 합니다. 북측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중국횡단철도(TCR, Trans-China Railway), 시베리아횡단철도(TSR, Trans-Siberian Railway), 한반도종단철도(TKR, Trans-Korean Railway)의 연결 프로젝트 등 다자간 경제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남측의 자본과 기술로 에너지망을 통합한다면, 한반도는 동북아 물류 및 에너지 거점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평화는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경제적 번영과 공정하게 나누는 사회를 지향하는 ‘동반성장의 실천’을 통해 완성됩니다.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것을 반드시 실현시켜 왔습니다. 남과 북이 함께 성장하는 밝은 통일의 미래를 흔들림 없이 열어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