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국가기록원
1964년 12월 3일 자유센터 개관식이 서울 장충동에서 열렸다. 자유센터는 아시아 자유국가에 대한 공산 침략을 막고 평화와 안전을 지키자는 뜻에서 1962년 아시아반공연맹임시총회에서 설치가 결의되었다. 자유센터 본관은 이렇게 개관됐으나 국내사정 등으로 국제자유회관은 완성을 보지못한 채 자유센터 운영기금 확보 차원에서 국제관광공사에 매도됐으며 뒤에 타워호텔로 변모하게 됐다. 이날 개관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자유센터'의 개관을 '세계 반공운동의 새 이정표'로 규정했다. KFF뉴스 관리자 기자|
1970년대는 휴전 이래 남북간의 치열한 이념공방과 끊임없는 북한의 침투공작에 대응, 반공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였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1974년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1976년 비무장지대 제3땅굴 구축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등으로 매일같이 남북간의 총격전 및 무장간첩 침투가 언론에 보도되는 등 남북관계는 더욱 경색됐다. KFF뉴스 관리자 기자|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 저격으로 사망한 후 전국의 사회단체들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김일성 규탄 및 일본 각성촉구 국민궐기대회가 같은 해 8월 27일 서울운동장에서 15만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KFF뉴스 관리자 기자|
1977년 3월 11일 존 W. 베시 유엔군 사령관이 연맹 이형근 이사장을 예방하고 박관수, 손원일, 이응준, 김정렬 고문과 오제도 이사, 박기병, 최영희, 유재흥 장군, 오정근, 김명회, 정내혁 의원 등 다수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의 안보 및 국방문제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해 환담했다. ▲ 1977년 3월 11일 반공연맹을 방문한 존 W. 베시 유엔군 사령관(위 사진)이 이형근 이사장으로부터 반공소년의 상을 증정받고 있다. KFF뉴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