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왜! 자유민주주의여야 하는가?(2)
주제 2 :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가 ‘민주주의’ 국가인가?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인가 아니면 ‘자유민주주의 국가’인가에 대한 정체(政體) 논쟁은 2011년부터 시작되어 10년이 넘게 진행 중이며, 양측 주장의 중심에는 (1편에서 언급하였듯이) 자유가 경제적 불평등의 주범이며 반공주의를 확산하여 민족 통일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과 더불어, 주목할 점은 양측 모두가 자신들 주장의 근거를 ‘헌법 해석’에 두고 있다는 것이며, 그 대상 헌법 조문은 전문과 1조 1항 및 4조이다. ----------------------------------------------------------------------------------------------- ▶ 헌법 전문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중략).....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 헌법 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 첫 번째로 논쟁의 대상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명시된 헌법 제1조 1항으로, 교과서에서 ‘자유’ 삭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를 근거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반면 많은 헌법학자들은 헌법 조문과 관계없이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국가로 정의한다. 이와같이 헌법 조문이 논쟁의 중심에 있는 현실과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대부분의 헌법학자의 의견을 감안하면, 헌법 1조 1항에 ‘대한민국은 자유민주공화국’이라고 명기하면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아마도 이런 점에 대해서는 그동안의 헌법 제정과 개정 과정에서도 숙고가 없지 않았을 것이며, 지금의 헌법 조문을 유지한 이유에도 특별한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본 고에서는 왜 우리 헌법에는 ‘자유민주공화국’이 아닌 ‘민주공화국’으로 명시되어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지금까지의 여러 판례 등을 통해 사법기관의 입장을 알아봄으로써 이번 주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 보고자 한다. ① 대한민국 헌법에는 왜 ‘자유민주공화국’이 아닌 ‘민주공화국’인가 ? 헌법 학자들은 헌법 1조 1항의 ‘민주공화국’은 세계의 어느 나라의 헌법에서도 볼 수 없는 매우 특별한 경우라고 평가한다. 제헌헌법 제정 과정에서 가장 많이 참고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의 제1조 1항에도 “독일제국은 공화국”이지 ‘민주공화국’이 아니고, 그 외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 등 민주주의의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나라들의 헌법에도 ‘민주공화국’은 등장하지 않는다. (출처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박찬승 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헌헌법의 첫 조항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제시한 것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헌법 제정 당시의 대한민국이 처한 국내외 정세 등을 고려한 것이며, 지금까지 이 조문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조문은 1919년 임시정부가 발표한 임시헌장 1조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에서 시작되었다. 임시정부가 당시 이를 헌법의 첫 조항에 명시한 것은 왕정이나 군주제에 대비되는 정치 형태로 공화제를 선택했고, 모든 권한이 황제에게 있다는 대한제국(大韓帝國)에 대한 부정과 ‘귀족공화국’과 대비되는 정치체제의 의미를 담아 ‘민주공화국’이라고 명시하였다.《‘법의 정신’을 저술한 프랑스의 몽테스키외는 공화제에는 귀족이 중심이 되는 ‘귀족공화제’와 평민이 중심이 되는 ‘민주공화제’가 있다고 밝힘》 반면, 1948년 제헌헌법에 명시된 ‘민주공화국’은 임시정부 시절과는 달리 일부에서 제기된 ‘인민공화국’에 대한 부정으로 사용되었다. 광복 후 한반도 북쪽에서는 인민공화국을 성립하기 위해 소련 주도로 건국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남쪽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주도 하 건국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이들에 의해 ‘인민공화국’을 선포(1945년 9월) 하는 등 공산주의 국가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로써 임시정부 시절부터 염원했던 민주공화국은 해방 전후로 공산주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혼란한 상황 속에서 어렵게 출발한 제헌국회는 임시정부를 계승하는 차원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헌법의 첫 조항에 담았다. 이처럼 1919년 임시정부는 ‘귀족공화국’과 구분하기 위해 ‘민주공화국’이란 표현을 쓴 것이고, 1948년의 제헌헌법의 ‘민주공화국’은 ‘인민공화국’과의 구분을 위해 사용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인민공화국의 ‘인민’은 프로레타리아라는 특정 계급을 칭하는 것으로, 인민공화국은 특정 계급에 의한 권력 집중을 의미하는데 반해 민주공화국의 ‘민주’는 모든 백성이 주인으로 이는 곧 권력분립을 의미하는 뜻을 담아 북한과 차별화하였다. 요약하면, 일부에서는 헌법에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존재하지 않음을 들어 ‘자유’의 삭제를 주장하지만 1948년 헌법 제정 당시의 관심사는 자유민주주의의 채택 여부가 아니었으며, 귀족공화국 또는 인민공화국과 같은 유사 공화국을 배제하는 것이 주된 관심의 대상이었다. 또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현재의 헌법에도 여전히 ‘대한민국을 자유민주공화국’으로 명시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 헌법의 기본정신은 자유민주주의이지만 사회적 약자의 보호와 빈부의 격차 해소 등을 위해 다소의 사회민주주의 요소까지 포섭(包攝, 어떤 개념이 보다 일반적인 개념에 포괄되는 종속 관계)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② 판례를 통해 본 대한민국 정치 체제 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양측의 주장 모두가 헌법 해석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법기관의 판단이 양측 주장의 정당성을 가름하는 기준이 될 것이므로, 이와 관련된 몇 가지 판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 판례 1 : 1990년,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헌법재판소의 판결(헌재 89헌가113) 『(국가보안법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만 한정하여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불필요하게 제한하지 않도록 엄격한 요건 해석을 통하여 운영한다면 헌법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시함으로써 국가보안법의 헌법 위반 여부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끼칠 위험성을 기준으로 판단 - 판례 2 : 2013년, 통합진보당 해산과 관련된 헌법재판소 판결(2013헌다1) 『해방 이후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과 더불어 채택한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는 보편적 가치로서 산업화, 민주화의 밑바탕이 되어 오늘날의 자유와 국가적 번영을 가져다 주었다』고 명시함으로써 대한민국은 출발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국가였으며, 이 체제가 오늘날 번영의 토대가 되었다고 판시. 『(통합진보당의 행태는) 진보적민주주의체제와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를 추구하면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그 전복을 꾀하는 행동』이라고 판시함으로써 통합진보당의 행태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위협이었다고 판결함. 지난 2014년 12월 19일 서울 종로구 헌밥재판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에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판결문을 읽고 있다. 헌재는 이날 정부가 청구한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및 정당활동 정지 가처분신청 사건에서 재판관 8대1 의견으로 통합진보당에 대해 해산 결정을 내렸다. - 판례 3 : 2018년, 양심적 병역 거부와 관련된 대법원 전원 합의체 판결문 (대판 2016도10912) 『(양심적 병역 거부 행위에 대한 형사적 처벌이)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도 위배된다』고 판시함으로써 비록 소수자일지라도 개인의 자유는 소중히 보호되어야 하며 대한민국은 소중한 개인의 자유를 지킬 의무가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을 명시 《이외에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는 헌법 전문과 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기반하고 있음을 다수의 판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다음 편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음.》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유’의 삭제를 주장하는 일부 학자들은 자신들 주장의 근거를 헌법에 두고 있다고 강변하지만, 확고한 민주화를 달성한 오늘의 대한민국 최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서는 대한민국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자유민주주의체제의 국가’임을 판례를 통해 명확히 밝히고 있다. 주지하듯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복수의 정당이 존재하며, 공정하고 자유롭고 경쟁적인 선거에 의해 선출된 이들이 국민을 대신해서 국가의 정사를 담당하는 대의제 민주주의, 의회민주주의의 형태를 취한다. 이런 측면에서,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 훼손 사례가 일부 있었다 하더라도 이는 특정 시기 통치의 문제일 뿐, 대한민국은 건국 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헌법상 자유민주주의 체제였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이처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등의 여러 판례와 대한민국의 여러 제도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하고,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에서 ‘자유’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헌법 해석을 빌미삼아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이 대한민국의 실체와 여러 판례들을 외면하면서 까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부정하기 위한 일종의 선전 선동의 수단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며, 나아가 인민민주주의와 같은 유사 민주주의의 수용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3편에서는 또 다른 논쟁의 대상 조문인 헌법 전문과 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하여 살펴보겠음.) 이종명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