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성호(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늘날 북한인권은 ‘세계 최악 중의 최악’이다. 2005년부터 2022년까지 18년 연속해서 매년 유엔 총회 본회의에서 북한인권 결의가 채택되어 온 것은 북한인권 상황의 심각성과 더불어 조속한 해결의 필요성을 말해준다. 같은 민족 성원이자 헌법에서 국가의 통일지향을 명시한 우리나라가 북한인권 개선에 앞장서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민족자애적인 것이며, 동시에 통일지향적인 자세라고 하겠다.
Ⅰ. 북한인권의 현주소
지금 북한 주민들은 북한이란 ‘거대한 감옥’ 안에서 마음대로 말하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에 자유롭게 가지도 못한다. 적법절차가 무시당한 채 강제로 끌려가며, 억울하게 매 맞고 피투성이가 돼 죽어가기도 한다. 주민들은 항시 이중삼중의 감시체제 하에 놓여 있다. 일반 주민의 경우 해외여행의 자유가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식량 부족과 경제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생존을 위한 탈출마저 ‘조국반역행위’ 내지 ‘비법월경죄’로 간주되어 의법(依法) 처리된다. 곧,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거나 중형에 처해진다. 죽음을 무릅쓰지 않으면 감히 ‘도망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정치범수용소는 열악한 북한인권 상황의 종합세트장이라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자의적 구금, 공개처형, 탈북민 강제송환, 양심․표현․종교의 자유 침해 등은 금일의 열악한 북한인권 실상을 말해주는 대표적 징표들이다.
Ⅱ. 북한인권 개선의 인프라: 국제협력 확대 및 대내적 역량 강화
1. 북한인권 공론화 및 증진을 위한 유엔기구와의 국제협력
북한인권 개선의 과제는 우리 혼자만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때문에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절실히 요청되는 분야이다. 이미 북한인권 문제가 국제이슈화 되어 있는 상황에서 국제공조는 ‘정당성(명분)’은 물론, ‘실효성’의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우선 우리 정부는 유엔 총회 및 인권이사회가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할 때 적극 동참해야 한다. 또 인권이사회가 마련한 특별절차의 하나인 ‘유엔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수시로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 각종 정보자료의 제공을 통해 북한인권 보고서 작성에 조력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긴급현안의 발생 시 이를 국제이슈화하고 유엔의 지원을 요청하는 통로로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을 활용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여성폭력특별보고관, 강제실종특별보고관, 고문특별보고관 등 다른 주제별 특별보고관들도 북한인권 개선 활동에 나서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인권이사회가 4년 6개월마다 실시하는 ‘북한인권 UPR(보편적 정례검토)’ 과정에서 한국은 응분의 책임있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 특히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방북․조사,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의 기술협력 수용 등이 조속히 실현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
북한인권단체들은 자체적으로 수집한 생생한 정보와 자료를 국제기구, 주요 관심국 및 해외 북한인권 NGO들과 공유함으로써 국제적 공감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나아가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북한 재외공관 앞에서 북한인권 개선 촉구 캠페인, 가두 집회․시위 조직, 주요 국가의 정상들에게 편지보내기 운동 전개, 북한 정권에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국내외 서명운동 전개(그 결과물인 1천만명의 서명지를 유엔 사무총장에 전달), 국제심포지엄 또는 공청회 개최, 국제기구․외국단체 등에 북한인권 영상물 제작․보급, 북한인권 관련 해외 인터넷 사이트 개설 및 인터넷 방송 운영자 지원 등을 예시할 수 있다.
이 밖에 국회의원들도 의미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간 ‘북한자유이주민의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IPCNKR)’이 의원외교 차원에서 국제공론화 및 실질적인 개선 방안을 모색하여 왔다. 앞으로도 이런 노력은 계승․발전되어야 한다.
2.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대내적 역량 강화
가. 북한 인권에 대한 국민적 관심 환기 및 인식 변화 유도
정부와 NGO들은 상호협력하는 가운데 북한인권 문제에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인권문제 제기와 인도적 지원을 이분법적 시각에서 볼 게 아니라, ‘통합적 관점’을 갖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 인권문제 제기 및 개선 활동은 인도적 요청이자 ‘인도주의 구현’ 방법의 하나이며, 인도적 지원은 식량권․생존권 등 인권 개선을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 그렇기에 ‘인도적 지원은 Yes, 북한인권 거론은 No’라는 입장은 북한인권에의 침묵을 정당화하기 위한 일방적 논리에 불과하며, 균형잡힌 남북관계 정립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려야 할 것이다.
나. 북한인권단체 간 역할분담, 특성화 및 역량강화 지원
현재 대부분의 북한인권단체들이 북한인권운동을 전개함에 있어 인력 및 예산 부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감안할 때 북한인권단체별로 역할 분담(주특기 확보) 및 이슈별․계기별 연대협력이 긴요하다. 예컨대, 정치범수용소, 여성 인권, 탈북민 보호․지원 등 특정한 북한인권 증진에 주력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밖에도 사법제도, 양심․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장애인 차별 등의 분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단체들을 새로이 육성하는 것도 고려해 봄 직하다.
다. 북한인권교육 강화 및 북한인권 활동가 양성 등
정부는 통일부 통일교육원, 지방자치단체, 중․고등학교, 민간단체 등에서 실시하는 통일교육이나 북한 강좌의 내용에 북한인권을 많이 할애토록 해야 한다. 북한인권교육 시 전문가 외에도 대화 능력이 우수한 탈북자를 활용함으로써 생생하고 피부에 와 닿는 효과성 있는 교육이 되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양질의 북한인권교육 교재 집필 및 전국적 보급, 북한인권 활동가 양성 프로그램 운영, 대학가에서 북한인권 관심 학생들의 저변 확대, 『북한인권백서』 해외보급 확대, 북한인권 활동가들의 국제적 네트워킹을 통한 온-오프라인 활동 장려 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상의 실천방안을 적절히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선 하루빨리 북한인권법에 명시된 ‘북한인권재단’을 정상적으로 가동시켜야 한다.
Ⅲ. 북한인권 핵심현안 대처방향
1. 북한 정치범수용소 해체 노력 및 탈북민 강제송환 대책
정치범수용소와 자의적 구금, 공개처형 문제를 북한인권의 핵심 목표로 설정하고 근원적 해결을 추구해야 한다. 다만 남북관계 전반을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가 전면에 나서는 어려움이 있다. 국내외의 NGO들이 선제적으로 제기하고, 정부는 배후에서 지원하는 역할 분담이 현실적이다.
해외에서 떠도는 탈북민들이 강제송환, 노동력 착취, 인신매매 등의 중대한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으나, 여전히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포기해선 안 된다. 국제사회가 유엔을 중심으로 중국 및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설득과 압박, 수치심 갖게 하기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2. 외부 세계 정보 전달을 통한 북한 주민의 인권의식 고양
국제사회가 밖에서 북한 당국에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것만으로는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 및 보장에 한계가 있다. 주민들이 인권 개념을 가지고 북한 당국에게 삶의 질 개선을 요구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실질적인 인권 증진이 실현될 수 있다. 이런 시각에서 외부 세계의 정보를 끊임없이 북한 내부에 유입시켜 바깥세상의 소식을 알리는 한편, 이를 통해 ‘우리식 사회주의’의 구조적 모순 및 체제개혁․경제개방의 당위성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 절실하다. 정보접근권 개선을 위해선 대북 방송, 전단 살포, USB나 비디오 유입 등 다양한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은 북한 주민의 ‘알 권리’ 충족은 물론, 남북 주민 간 의사소통과 정보공동체 형성을 위해서도 의미 있는 사업이다(이런 관점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은 조속히 폐기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대북 정보 전달은 조용하고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실시함으로써 가급적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3. 북한인권 침해기록 및 핵심 가해자 책임규명
북한인권 침해 기록은 북한 관리들의 심각한 인권 유린을 억제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북한주민의 인권을 증진하는 방안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1961년 서독이 니더작센주의 잘츠기터(Salzgitter) 시에 설치한 중앙법무기록보존소(Dile zentrale Erfassungsstelle)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 기구는 북한 내의 인권침해자들에게 그들의 반인권적 범죄행위가 구체적으로 기록․보존되어 장차 통일 후 형사소추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함으로써 인권침해를 자제하도록 하려는 데 제도적 취지가 있다. 이는 우리의 북한인권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우리 정부는 통일되는 그날까지 일관되게 북한인권 침해를 기록하고 이를 적절히 공표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 인권침해를 억제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유엔서울인권사무소도 북한인권 가해자의 책임규명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런 활동을 지원하는 한편, 가능한 협력방안을 강구․실천해 나가야 한다.
4. 대북 지원을 통한 북한 주민의 식량권․건강권 증진
영․유아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분유 등 이유식)을 비롯해 민간 차원의 소규모 식량지원(쌀, 밀가루, 옥수수 등)은 남북관계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순수한 인도주의’ 구현 및 식량권 개선 차원에서 계속 실시해야 한다. 또한 북한 주민의 건강권 증진을 위하여 대북 의료지원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료지원은 아동의 건강 보호(특히 통일세대 기형화 방지)를 통해 통일세대 인구의 자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좋은 사업이다. 단기적으로는 결핵관리사업, 어린이 B형 간염 예방사업, 말라리아 방재사업 지원 등에 주력하되, 중․장기적으로는 실험실이나 제약공장 건설 지원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종자 개량, 양묘장 설치 등 농업․산림분야의 협력도 가능한 것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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