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 기억해야 할 대한민국의 전쟁영웅들 희망없이 살아가던 어떤 이에게 누군가 던진 희망의 메세지가 삶의 활력소가 되어 주기도 하고, 늘 기죽어 있던 어느 학생을 향한 선생님의 칭찬과 용기를 북돋우는 한마디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하며, 패배 직전에 몰렸던 운동선수들에게 코치의 독려는 승부를 뒤집는 기적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국가지도자의 한마디 역시 국민들의 의지를 결집시켜 상상 이상의 결과를 창출하기도 하며, 늘 죽음의 공포 속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전장에서의 장병들에게 지휘관의 한마디는 투혼을 불러일으켜 절대 열세였던 전장의 상황을 한 순간에 반전시키기도한다, ① “내가 물러나면 나를 쏴라” 다부동 전투에서 백선엽 사단장이 부하들에게 던진 이 한마디는 다부동이라는 한 지역의 전투 승리에 머문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지켜낸 결의에 찬 지휘관의 절규(?)였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한 마디가 죽음의 전선에서 지휘관들이 할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한 진두지휘의 한 전형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다부동 전투의 승리는 단순한 한 지역에서의 승리를 넘어 전 한반도를 공산화의 위기에서 구출한 역사적 전투라는 특수성 때문에 더욱 특별한 의미를
1. 역사교과서 논란 재현 교육부는 새 교육과정에 따른 초·중·고교 검정교과서 심사 결과를 지난 8월 30일 관보에 게재했다. 교육부는 2017년 5월에 “국정교과서 폐지, 중등 역사교과서 검정 체제 환원 ”한다는 고시를 발표한 바 있는데, 이에 따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24년 8월 30일, 2024년도 교과용 도서 검정 심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이에 관심이 쏠린 것은 바로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다. 박근혜 정부 당시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있었고, 문재인 정부 당시에 검정 체계로 바뀐 교과서에 대한 집필 기준이 '좌편향' 논란이 일었는데, 보수 정부인 윤석열 정부에서 검정 심사를 받는 교과서인 만큼 ‘우편향’ 논란이 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이번에 새로 승인된 보수성향의 한 교과서에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야당 의원과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 교과서 논란은 단순한 교육 정책 이상의 문제로서 국가의 역사적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에 대해 이념적인 갈등을 반영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역사 교과서 논란의 원인이 되는 국정과 검정교과서 의미, 외국의 역사교육 상황, 한국 역사교육에서 논란의 주요 이슈, 그리고
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가 5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 5일(현지 시각) 세계에서 가장 힘센 선출직을 놓고 격돌한다. 세계 패권국이자 자유민주주의 지도국인 미국의 대선은 4년 주기로 진행되는 지구적 이벤트다. 미 대선은 국제질서와 안보, 세계 경제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미 대선이 몰고 올 파장에서 벗어날 국가는 지구상에 없다. 대한민국을 비롯해 유럽연합(EU), 일본, 호주, 캐나다 등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물론 중국, 러시아, 북한 등 권위주의 국가들도 미 대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유권자들과 세계인들은 9월 10일(현지 시각) 해리스와 트럼프의 첫 TV토론을 숨죽이며 지켜봤다. 토론은 해리스의 판정승이었지만, 판세를 뒤흔들 결정적 한 방은 없었다. 여전히 판세는 초박빙이며, 유동적이다. 트럼프와 해리스 누구도 절대적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미 대선을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는 복합적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낙마에 따른 민주당의 후보 교체, 당파적 양극화의 심화, 간선제 방식으로 치러지는 미국의 선거 제도가 맞물려 있다. 미 대선전은 전·현직 대통령
잠시 잠잠하던 친일논쟁이 광복절을 계기로 다시 수면으로 떠 올랐다. 자그마한 계기만 있어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친일 논쟁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삭일 수 없는 것은, 이 논쟁의 종착점이 항시‘대한민국의 부정’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부정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친일파가 득세한 나라라는 주장도 모자라, 죽음을 무릅쓰고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켜낸 6.25전쟁의 영웅들까지 친일파로 내몰고 있으며, 이런 현실을 접할 때마다 안타까움을 넘어 때론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이런 현실을 바라보며, 우리 필진은‘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밝히고자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재 조명하는 연재물을 지난 5회에 걸쳐 게시한 바 있으며, 이번에는 그 연장선상에서‘백선엽 장군을 포함한 6.25전쟁의 영웅들이 어쩌다 친일파로 몰리게 되었는지?’그 실상을 3회에 걸쳐 파헤쳐 보고자 한다. 이 연재물을 통해 일방적으로 친일파로 매도당하고 있는 6.25전쟁 영웅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거짓 선전․선동의 실태를 이해하여 국민 통합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밀알이 되길 희망한다. - 편집자 주 - 진보 성향의 민간인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
대한민국의 북 핵 정책이 완전히 실패 했음을 반증(反證)하는 중요한 사례가 보도되었다. 우리 정부의 공식 기조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최근의 이런 사태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에 대해서 국회에서는 국민을 대표해서 대대적인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개최해야 마땅하다. 非핵화타령만 한가하게 외칠 시기는 이미 지났다. 美國정부가 지난 3월 바이든 대통령의 승인을 얻은 북·중·러에 대응하는 ‘비밀 핵 전략’의 내용이 무엇이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의 빠른 핵 무기 확장과 북한의 핵무기 숫자 늘리는 속도에 당황한 미국의 핵 대응팀이 이제는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美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 당의 정강에서 북한의 非핵화논리가 빠진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해리스 민주당 대선후보는 북 비핵화 의지 변함없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정강에 빠진 것 자체는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있다는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는것이다. 조금만 고민을 해 보면,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내놓은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강 개정안에 북한 비핵화 목표가 담기지 않은 사실은 본격적인 한반도에서 핵 군축협상의 시대가 오는 예고편 같기도 하다. 미국 민주
자유의 혁명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세계만방을 향해 독립을 선포하였다. 그날의 경축식에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이 새로운 나라는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는 민주정체라고 선언하였다. 이에 국민이나 정부는 항상 주의해서 개인의 언론, 집회, 종교, 사상의 자유를 극력 보호해야 한다고 하였다. 뒤이어 그는 지난 40년을 회고하면서 우리는 전체주의 국가 일본의 억압하에서 우리의 말과 행동과 생각이 자유롭지 못했지만,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위해 쉬지 않고 싸워서 결국 오늘의 영광을 맛보기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독립운동을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독립운동에 종사한 여러분의 대답은 각기 상이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일본은 우리의 원수이며, 이에 일본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것은 아무래도 참을 수 없는 굴욕이기에 독립운동을 한다고 할 것이다. 실제 많은 운동가들이 그러하였다. 공산주의자들은 조국의 나아가 아시아의 공산혁명을 위해 독립운동을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승만처럼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독립운동가는 과연 몇이나 되었을까. 이승만 대통령은 재임 중 대국민 방송이나 담화에서 여러 차례 자신의 인생을 혁명가 50년
“저는 오늘 분명히 말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건국 60년은 성공의 역사였 습니다. 발전의 역사였습니다. 기적의 역사였습니다.” -이명박, 2008년 광복절 경축사- “65년 전(1948년) 오늘은 외세의 도전과 안팎의 혼란을 물리치고 대한민국을 건국한 날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이 출범한 것이야말로 오늘의 번영과 미래 로 나아갈 수 있었던 첫 걸음이었습니다.” -박근혜, 2013년 광복절 경축사-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보수나 진보 또는 정파의 시각을 넘어서 새로운 100년의 준비에 다 함께 동참 해 주실 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 문재인, 2017년 광복절 경축사 - 위 3명의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가 대한민국 건국 시기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같은 나라, 같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건국을 1948년으로 규정한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1919년을 건국의 기원으로 삼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1919년을 대한민국 건국의 해로 주장하는 측에서는 “대한민국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라고 명시된 헌법 전문을
선전 선동가들의 특징 중 하나가 ‘언어와 어휘 선택에 탁월하다’는 것이다. 이승만을 비난하는 사람들 역시 이런 특기의 소유자로 이승만에게 ‘분단의 원흉’ ‘친미 사대주의자’ ‘친일파’에 이어 ‘런승만’이라는 누명을 씌워 마치 대통령이 국민을 버리고 혼자 살자고 도망한 인물로 매도해 버렸다. 각박한 세상에 굳이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고자 하는 노력조차 버거운 사람들에게는 ‘런승만’이라는 별칭 하나로 이승만은 그런 인물이 되어 버렸다. 그들이 이승만을 비방하기 위해 지어낸 ‘런승만’이란 ①‘국민을 내버려두고 서울을 벗어나 피난했다’는 것과 ②‘자신은 피난을 가면서 국민들에게는 서울이 안전하다고 육성 방송을 했다’는 것, 그리고 ③‘한강 인도교 조기 폭파로 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승만에게 씌워진 ‘런승만’의 누명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3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① 대통령이 서울을 떠나 피난 한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나? 각종 기록에 의하면 대통령이 북한의 남침을 처음으로 보고 받은 시간은 6월 25일 10시 30분 신성모 국방부 장관으로부터였다. 처음 대통령은 서울 고수를 고집했지만 일부 각료와 프란체스카 여사의 간곡한 권유로 27일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