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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제7차 핵실험을 한다면

 

김태우(전 통일연구원장, 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그리고 중국은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이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5개 국이다. 이들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과 함께 핵실험을 중단했다. 미국, 러시아, 영국 등은 CTBT를 협상하던 시기인 1990년대 초반 중단했고 프랑스와 중국은 조약이 서명된 1996년에 핵실험을 마감했다. 이후 1998년에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했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고, 이후에는 핵실험을 실시하는 나라가 없었다.

 이 침묵을 깬 것은 북한이었다. 2006년에서 2017년까지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나홀로 핵실험 국가’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 지금 미국 정보기관들이 풍계리 핵실험장 3,4번 갱도에서 핵실험 준비가 끝난 것으로 평가하는 가운데 북한의 제7차 핵실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정치군사적 측면에서 북한은 핵실험을 재개할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을 쌓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자신들의 막무가내식 핵무력 증강과 미사일 도발이 미 핵우산 강화와 한미 연합훈련 재개를 초래했음에도 이를 ‘북침 연습’으로 뒤집어 씌우면서 ‘압도적 대응’을 위협하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은 북한의 전통이며, 핵실험이나 ICBM 발사가 그 ‘압도적 대응’일 수 있다.

 기술적 수요 면에서도 그렇다. 모든 핵실험은 핵무기의 개발, 성능 개선, 유지, 관리 등을 위한 소중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해 실패한 핵실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2월 8일 열병식에서 전술핵 운용부대까지 선보인 북한으로서는 저위력 핵무기의 실전배치를 위해 또는 제대로 검증해보지 못한 수폭의 전력화를 위해 핵실험을 간절히 원할 지도 모른다.

 종합컨대 지금은 핵실험을 재개할 국제정치적·군사적·기술적 수요가 충만한 상태에서 최고 지도자의 결단이 있으면 언제든 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어쩌면 한미 연합훈련에 맞추어 터뜨릴 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건대, 한국은 전혀 멈출 기미조차 없는 ‘핵특급’을 당근과 채찍으로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잃어버린 30년’을 보냈고, 정책결정자들은 대북기조와는 별개로 ‘남북 간 핵균형’ 상태를 구축·유지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경청하지 않았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핵무장한 북한 앞에 발가벗고 서서 핵우산에 의존하다가 지금은 그 핵우산의 신뢰성을 믿지 못하는 구조적 안보위기를 맞고 있다. 그래서 한국은 북한이 제7차 핵실험을 한다면 뒤늦게서라도 지난 날을 반성하고 ‘밀린 숙제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잃어버린 30년’과 북한의 핵강국 코스프레

 한국이 북핵 포기 설득에 실패한 것은 골든타임을 놓쳐서가 아니다. 햇볕정책 때문도 아니고 강풍정책 때문도 아니다. 애초부터 골든타임이란 존재한 적이 없었다. 북한에게 있어 핵무력은 ‘어버이 수령’의 유훈이자 신성불가침의 국책사업이고, 백두혈통 세습 독재체제를 정당화하는 상징물이며, 50배 경제력을 가진 대한민국을 압도하고 궁극적인 주체통일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비대칭 무력이다. 또한, 주체통일을 가로 막는 최대 걸림돌인 한미동맹을 이완시키고 유사시 미군 증원을 차단하는 군사수단이다.

 북핵은 식량부족 사태나 외부의 회유․압박으로 포기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이렇듯 북한의 ‘핵특급’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질주하는 중에도 한국의 과거 정부들은 비핵화외교를 통해 핵 포기를 설득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안보정론에 입각한 대응을 생략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핵보유 선언은 협상용 카드(2005, 임동원 국가정보원장),” “북핵 문제가 안 풀리는 것은 미국 내 강경파가 동북아 주도권을 위해 가상의 적이 필요하기 때문(2005,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북핵은 한국이 햇볕정책을 버리고 강풍정책을 택한 결과(2016,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김정은 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했다(2018, 정의용 대북특사)” 등 지도자들의 경솔한 발언들이 북핵 위협의 진실을 가리는데 기여해왔다.

 물론, 애초부터 북한이 가진 백절불굴(百折不屈)의 핵야망을 꿰뚫어본 전문가들은 남북이 ‘농축 및 재처리 포기’에 합의했던 1991년 비핵화공동선언이 한국의 손발만 묶을 것이라고 경고했었고, 핵대화는 유익한 것이지만 그것으로 북핵을 포기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했었으나 이를 경청한 정부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 북한은 수십 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세계 아홉 번째 핵보유국으로 등극했고, 그 과정에서 1994년 제네바핵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 2007년 2·13 합의 등 핵외교가 도출한 합의들은 모두 사문화되었다.

 북핵의 양적․질적 증강도 뚜렷하다. 북한은 대륙간탄도탄, 변칙기동탄도탄, 극초음속 미사일 등 다양한 단·중·장거리 투발수단들을 확보했고, 2022년 한해에만 43회에 걸쳐 103기의 미사일을 쏘는 광란극을 벌였다. 핵전략도 제1세대 ‘순수 억제용’에서 제2세대 ‘핵사용’전략으로 바꾸었고, 미국을 향해서는 ‘억제’ 그리고 한국에 대해서는 ‘핵사용’을 위협하는 2-track 핵전략을 구체화했다. “핵무력의 사명은 전쟁초기 상대의 전쟁 의지를 소멸시키는 것”이라고 밝힌 2022년 5월 김여정 담화는 2016년 제7차 당대회에서 밝힌 ‘선제 핵사용 포기(NFU)’ 독트린을 뒤집고 ‘대남 선제 핵사용 불사’를 선언한 것이며, ‘북한판 핵태세검토서(NPR)’에 해당하는 2022년 ‘핵무력정책법’을 통해 이를 재확인했다.

 핵무력정책법은 북한이 공격을 받든 안받든 최고 지도자가 명령만 내리면 언제든 누구를 향해서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황당하고 야만적인 법령이다. 이렇듯 북한이 핵강국 코스프레를 하는 동안 한국은 점점 더 깊은 핵인질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이것이 ‘잃어버린 30년’이다.

 

‘취약성의 창(窓)’과 한반도의 차악(次惡) 시나리오

 1957년 5월 소련이 세계 최초의 대륙간탄도탄 세묘르카(R-7)를 발사하고 이어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를 쏘아올리자 미국 전역에서 ‘취약성의 창’ 논쟁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소련이 미국을 타격할 장거리 수단을 보유한데 반해 상응수단을 가지지 못한 미국은 ‘미사일 격차’를 신속히 해소하라는 주문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미국이 서둘러 1959년에 아틀라스(Atlas-D) 로켓을 발사하고 후속으로 타이탄(Titan-1,2,3,4)과 미니트맨(Minuteman) 미사일을 개발하면서 이 공백을 메웠지만, 미국의 전략가들은 이 공백기를 가장 위험한 시기로 보고 대책 마련에 분주했었다.

 여기에 비추어 본다면 지금 한국은 핵격차로 인한 안보공백기에 있다. 즉, ‘취약성의 창’이 활짝 열려 있는 상태다. 게다가 북한의 대미 핵게임이 ‘동맹 이완’ 효과를 거두면서 80%에 가까운 한국 국민이 독자 핵무장을 찬성할 정도로 미 핵우산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상태이며, 동맹국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돈과 노력을 퍼붓고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기회의 창’이 활짝 열려 있는 셈이다.

 이런 논리로 현 안보 상황을 평가한다면 지금은 6·25 전야 만큼 위험한 시기다. 최악 시나리오는 북한이 핵위협을 앞세우거나 과시적 핵사용을 통해 한국의 기를 죽이면서 전면 남침을 개시하는 것이겠지만, 이것이 부담스럽다면 차악 시나리오를 선택할 수도 있다. 즉, 핵위협을 앞세우면서 서북도서들을 기습 점령하여 서해 질서를 재편하는 제한적 도발을 통해 한국 수도권을 더욱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전략적 우위를 얻으려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북한 앞에 더욱 왜소한 존재로 전락할 것이다. 한국은 이런 가능성을 원천 봉쇄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한반도 핵균형과 확대억제 강화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12월 30일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미 핵전력을 가지고 한미 공동으로 기획하고 연습하겠다”고 했고, 1월 11일 국방·외교부의 업무보고 시에는 “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한국에 미 전술핵을 배치하거나, 한국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국 과학기술로 빠른 시일 안에 핵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경제포럼(WEF) 참석을 위해 스위스를 방문한 1월 20일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는 “한국이 NPT, 즉 핵무기비확산조약을 존중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언급했고, 3·1절 기념사를 통해서는 일본을 ‘협력 파트너’로 규정하면서 안보위협 대처를 위해 한일 안보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미국은 ‘한·미·일 핵우산 협의체’를 제안하면서 한일관계 강화 움직임에 화답했다.

 

 

 필자를 포함한 일단의 전문가들은 북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우방들과의 안보협력 강화와 함께 한반도에서의 ‘단계적 핵균형’을 주장해왔었다. 즉, 당장 핵무장을 할 수 없는 현 단계에서는 동맹의 핵역량으로 남북 간 핵균형을 구축하고, 북핵 위협이 더 나빠지는 제2단계에서는 동맹 합의 하에 핵무장을 하며 이후 중국 등 대륙으로부터의 안보위협이 심각한 단계가 되면 아시아의 민주국가들이 핵무장을 한 상태에서 미국과 ‘아시아판 나토’를 결성하여 대처하자는 것이다.

 또한  NPT 체제 내에 머물면서 핵우산과 확대억대의 강화를 통해 북핵을 억제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내용적으로 제1단계 핵균형에 해당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크게 환영했다. 그래서 지금 한미 간에 진행되고 있는 확대억제 강화 조치들을 기대감을 가지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물론, 제1단계 핵균형을 위한 조치에는 핵탑재 미 전략잠수함의 한반도 인근 해역 상시배치 또는 수시 시찰, 북한을 겨냥하는 극초음속 핵무기(Dark Eagle) 배치(오키나와 또는 괌), 구체적인 핵상황들을 가정한 연합 핵연습, 동맹조약에 핵우산 조항 삽입 등 다양한 선택이 있을 수 있지만, 핵심은 전술핵 재배치일 것이다. 코앞에 현시(顯示)된 응징역량을 북한이 보고 느끼도록 해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북핵 억제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 내부의 찬반,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미국 정부와 학계에서의 부정적 여론 등을 감안하면 현재 한미동맹 차원에서 취해지고 있는 확대억제 강화 조치가 ‘핵심’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눈덩이처럼 커지는 북핵 위협과 격화되고 있는 신냉전 대결구도를 종합한다면, 제1단계 핵균형을 즉시 시행하면서 동시에 제2단계 핵균형을 위한 독자 핵무장 잠재력 함양에 착수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에게 부여된 시대적 안보과제다.

 북한의 제7차 핵실험은 다시 한번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한국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악재로 자리매김되겠지만, 한국 정부는 이 ‘밀린 숙제들’을 한꺼번에 처리하여 안보공백을 메워야 한다.

 북한 앞에 열려 있는 ‘기회의 창’을 재빨리 닫고 미래를 향해 내달려야 한다. 북한의 핵실험을 전술핵 재반입과 함께 한국판 맨하탄 프로젝트 착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강군을 향한 새로운 국방개혁, 한·미·일 안보협력의 구체화 등을 가져오는 계기로 삼자고 하면 지나친 주문일까. 물론, 국내에는 핵대응에 반대하면서 ‘평화우선 접근’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많지만, 그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안보정론에 입각한 핵대응이 평화를 가장 잘 지키는 방법이며, 핵무기가 더 이상 북한의 일방적 무력수단이 되지 않고 경제적·군사적 부담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북한을 진정한 비핵화 대화로 끌어내는 길이자 한반도 비핵화의 길이다.

 

게재된 글은 한국자유총연맹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