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근(국제정치학자, 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
한국전쟁이 휴전된 후 두 달 여 만인 1953년 10월 1일, 워싱턴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됐다. 이후 한·미 두 나라는 동맹국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한·미동맹은 곧 70주년을 맞이한다. 세계 동맹의 역사에서 모범적 성공 사례가 되는 한·미동맹은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을 성공적으로 방지했고, 본래 목적은 아니었지만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는데도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공산주의 체제에 비해 월등히 우월한 체제임을 증명해 보이는 구체적인 사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미동맹이 언제라도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체결될 당시부터 우여곡절을 겪었고 한·미동맹의 미래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벌어지는 살벌한 반미 데모들은 이곳이 서울인지 평양인지 헷갈리게 할 정도로 한·미동맹은 심한 도전을 받고 있다.
이 글은 한·미동맹이 성립된 과정과 그것이 대한민국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는지 그리고 한·미동맹이 오랫동안 당면했던 도전은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한·미동맹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되어야 한다는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동맹은 ‘공통의 적’을 가진 나라들이 맺는 군사적 약속
동맹은 “공통의 적”을 가진 둘 또는 그 이상의 나라들이 그 ‘공통의 적’에 함께 대처하자(즉 함께 싸우자)는 군사적 약속이다. 동맹은 친한 나라들이 체결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미국과 소련은 전혀 친하지 않은, 오히려 적대적인 나라들이었지만 두 나라는 2차대전 중 나치 독일과 군국 일본을 ‘공통의 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동맹국이 되어 함께 싸웠다. 평양을 점령한 소련군이 타고 온 트럭은 미국이 제공한 것이었다.
한·미동맹 역시 공통의 적을 상정하고 체결된 군사적 약속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태평양 지역(Pacific Area)에서 야기될 위협에 양국이 함께 대처하자고 말하고 있는데 태평양 지역이란 당연히 북한, 중국, 소련(현 러시아)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이 자꾸 우리나라를 중국과의 싸움에 끌어들인다’며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한·미동맹의 적용지역은 엄연히 ‘태평양 지역’으로 명기되어 있고 당연히 중국이 포함된다.
한·미동맹을 만들어 낸 ‘외교의 신’ 이승만 대통령
한·미동맹이 체결될 당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후진국 중 하나였다. 물론 미국은 그때도 세계 최고, 최강의 나라였다. 이처럼 격이 맞지 않는 두 나라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1902년, 국제적으로 상당한 지위에 올랐던 일본이 영국과 동맹을 체결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일본 사람들은 감격에 겨워 ‘두꺼비가 달님과 결혼했다’며 분에 넘치게 축하했었다.
한·미동맹은 당시 국제정세를 가장 정확하게 읽었고, 미래 한국이 나아갈 길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의 귀신같은 외교술의 결과다. 세계는 한·미동맹을 관철해 낸 이승만 대통령을 ‘외교의 신(神)’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국무부와 군부조차 반대하던 것을 이루어 내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은 최악의 벼랑 끝 전술도 구사했고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을 체포구금하려는 계획마저 세웠었다. 1953년 5월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마크 클라크 대장은 ‘현시점에서 한·미군사동맹 체결을 반대한다’는 보고서 마저 올렸다. 한·미동맹 체결에 성공한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이 동맹 때문에 우리는 두고두고 큰 이득을 보게 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방위조약의 내용에 불만(당시 한국의 지도자들은 한·미동맹을 NATO 수준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을 품은 한국 국회는 조약의 비준을 지연시키고 있다가 조약 체결 1년 1개월여가 지난 1954년 11월 18일 겨우 조약에 비준했고 그날부터 한·미동맹은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한·미동맹은 한국의 안보와 경제 발전의 견인차
한·미방위조약 제4조는 미국군의 한국 주둔을 허락하고 있다. 물론 주한미군은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한국에 파견되었지만 휴전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정당한 근거는 한·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것이다. 조약 제4조는 ‘상호 합의에 의하여 미 합중국의 육군, 해군,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비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용하고 미 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특히 의정부와 동두천 지역에 집중에서 주둔하고 있었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침략하기 위해서 주한미군과의 전투를 회피할 방법은 없었다. 또한 북한이 미국군과 싸워 이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북한은 전쟁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야욕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 재발은 억제되었으며 평화가 유지되었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한국인들은 싸우며 일하고 건설했고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성장,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풍요한 나라가 되었다. 그동안 세계는 한국에 투자했다. 주한미군과 한·미동맹 덕택에 한국은 투자해도 되는 나라라고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이 폐기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했다면 한국에 투자되었던 자본은 물밀듯이, 순식간에 다 빠져나갔을 것이다. 미래에도 이 같은 상황은 지속된다. 한·미동맹은 미래에도 한국의 안보와 경제발전의 확실한 담보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한·미동맹을 파괴하려는 꼼수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평화협정
2021년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과 국방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대미 인식조사에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사람들의 93.9%, ‘국민의힘’당을 지지한다는 사람들 중의 95.6%가 한·미동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한·미동맹은 대한민국 국민들 거의 모두가 지지한다. 그러나 우리는 반미 데모대를 거의 매일 접하며, 그들의 피켓에 쓰여있는 섬뜩한 구호들을 언제나 보고 들으며 살고 있다.
과거 이 나라 정권과 의회를 장악한 주사파 출신 정치가들은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폐기를 목적으로 삼고 있기도 했다. 한국 내 주사파들과 북한은 한·미동맹이 해체된다면 적화통일의 꿈을 쉽게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 국민들이 한·미동맹을 적극 지지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은 한·미동맹 폐기를 목표로 하는 꼼수들을 생각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평화협정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한국군의 지휘권을 맥아더 당시 유엔군 사령관에게 이양했었다. 한국전쟁 후 유엔군 사령관(차후 한미연합사령관)은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계속 행사해 오다가 1994년 12월 1일(김영삼 대통령 재임) 평시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은 한국군 총사령관에게 이양되었고 전쟁이 발생할 경우, ‘양국의 합의’에 의거, 한미연합사령관인 미군 장성이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되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전시작전통제권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놀랍게도 어서 빨리 가져가라고 응수했다. 미국은 한 마디 더 부연했다. 미국군이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져간 적이 없으니 ‘환수’라는 말은 부적절하다고. 노무현 정부는 당장은 곤란하다며 임기를 마친 후 4년이나 지난 시점인 2012년 4월 17일부로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겠다고 약속했다. 필자의 사견으로는 노무현 정권 인사들이 1950년, 유엔군 사령관이 한국군 작전지휘권을 가져간 날인 7월 14일을 거꾸로 읽어 4월 17일이라는 날짜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2012년 4월 17일 임기중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은 2015년 12월 1일로 연기했고, 2015년 12월 1일 임기중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은 2020년대 한반도 안보상황이 대폭 개선된 후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중 조속히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받겠다고 계획했지만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와 미국은 한국군이 전시작전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세 차례에 걸쳐 평가한 후 한국군이 조건을 충족시킬 경우 돌려주기로 합의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을 모두 취소해 버리는 바람에 작전통제 능력을 검증할 기회도 함께 취소하고 말았다.
전쟁이 발발한 후, 미군이 한국군을 지휘할 것이냐의 여부를 최종결정하는 사람은 한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이다. 한국 대통령이 반대하면 미군은 어느 경우라도 한국군을 지휘할 수 없게 되어있는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작전통제권을 “자주”의 문제로 보는 사람이 있으니 문제다. 전쟁이 나면 한국군이 미군의 지휘를 받는 제도는 전쟁억제를 위해서 고안한 것이다. 미국군이 전시작전통제권을 갖는다는 사실은 ‘전쟁이 발발한다면 한국군 전체가 미군이 된다’고 북한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전쟁을 억제하는 확실한 장치인 것이다.
평화협정 역시 마찬 가지다. 궁극적으로 주한미군을 몰아내고 한·미동맹을 해체하기 위한 수순으로 활용하려는 꼼수인 것이다. 역사상 평화조약이 평화를 성공적으로 지킨 사례는 거의 없다. 1817년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체결되었던 러시-바곳 협정만이 아마도 거의 유일한 평화협정 성공 사례일 것이다. 한국과 북한 관계가 미국-캐나다에 비유될 수 없는 한 평화협정은 음흉한 꼼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세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한·미동맹이 곧 70주년을 맞이한다. 이처럼 긴 역사를 가졌다는 사실 그 자체가 동맹의 효율성과 가치를 말해준다. 한국도 미국도 모두 한·미동맹으로 덕을 보았다. 앞으로 다가올 가까운 미래에 한국은 한·미동맹으로 인한 자유통일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다. 미국은 한·미동맹 때문에 중국의 패권 도전을 손쉽게 제압하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세계를 주도하는 나라로 남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한·미동맹은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 나아가서 세계의 평화와 발전의 견인차가 될 것이다.
게재된 글은 한국자유총연맹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