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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유민주주의여야 하는가? (3)

주제 3: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헌법 등장 배경과 의미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우리 헌법에 자유민주주의라는 용례(用例)가 없다는 논리와 함께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자유민주주의로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관련한 그들의 주장을 정리하면, 첫 번째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해석이고, 두 번째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헌법에 처음 도입된 시기와 관련하여서이다. 따라서 본 고에서는 그들 주장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정의와 대한민국 헌법에 반영된 배경, ② 판례 등을 통해 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자유민주주의의 관계, 그리고 ③ 대한민국 헌법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반영된 시기와 내용의 변화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정의와 대한민국 헌법 반영 배경

 

자유란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근본 사상이고 누구에게라도 예외 없이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이지만, 자칫 무한대의 자유가 이기주의적인 성향을 띠게 되면 타인에게는 오히려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처럼 ‘자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위험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수단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고 할 수 있다. 즉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반(反) 민주주의자들의 ‘자유’를 일정 정도 제약하는 일종의 제동 장치이다.

 

전 세계적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헌법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49년 독일로서, 그 배경에는 1930년대부터 독일을 휩쓴 나치당 및 히틀러와 관련이 있다. 주지하듯이 히틀러는 지극히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등장하였지만, 정권을 쟁취한 후 국회의 입법권을 행정부가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수권법’을 국민투표를 통해 통과시켜 민주주의의 대표적 원칙 중 하나인 ‘삼권분립’을 훼손하였다. 바로 이러한 일련의 민주주의의 훼손 행위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발생하였음을 감안하여 새로이 세워진 독일연방공화국(서독)에서는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자들의 발호를 막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질서와 체제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라는 개념으로 명문화해 기본법(우리의 헌법에 해당)에 명시했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극우 및 네오 나치 세력인 독일 ‘사회주의국가당’과 극좌 공산주의 세력인 ‘독일공산당’을 1952년과 1956년에 각각 해산한 바 있다. 그 후 1972년에는 헌법보호조치 일환으로 ‘급진주의자의 결의’(일명: 급진주의자 훈령)를 제정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공직 임용 자체를 원천 차단하고, 공무원에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수호를 위한 의무를 부과하였다.

 

대한민국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은 과거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정립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1972년 처음으로 개정헌법에 명시한 이유는 독일의 경우처럼 방어적 민주주의의 성격에 추가하여,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와는 분명하게 대별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임을 명확히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장차 어떠한 통일한국을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기준으로 1987년 9차 헌법 개정 시 제4조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명시하였다.

 

②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자유민주주의’와의 관계(판례를 기준으로)

 

교과서에서 ‘자유’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자유’를 포함해야 한다는 측에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2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한민국의 정체(正體)가 ‘자유민주주의’인지 단순히 ‘민주주의’인지에 대한 논란이 헌법 해석에 기반하고 있는 것처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해석 역시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그동안의 헌법재판소의 판례들을 통해 어느 쪽 주장이 정당한지를 확인해 보고자 한다.

 

판례 1) 2000년, 제주4·3사건과 관련된 판결 (2000헌마238)

 

『우리 헌법은 전문에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고 선언하고, 제4조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헌법의 지향이념으로 삼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정치적 결단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및 시장경제 원리에 대한 깊은 신념과 준엄한 원칙은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통틀어 일관되게 우리 헌법을 관류하는 지배원리로서 모든 법령의 해석기준이 된다』

 

판례 2) 1994년, 정부조직법에 관련된 판결 (89헌마221)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보호를 그 최고의 가치로 하여, 이를 구현할 통치기구로서 입법권은 국회(헌법 제40조)에,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헌법 제66조 제4항)에,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헌법 제101조 제1항)에 각각 속하게 하는 권력분립의 원칙을 취하는 한편......』

 

판례 3) 1990년, 국가보안법 제7조에 대한 위헌 심판 (89헌가113)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危害)를 준다 함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反국가단체의 一人독재 내지 一黨독재를 배제하고 多數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와 자유·평등의 기본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 질서의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고,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私有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 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 우리의 내부 체제를 파괴·변혁시키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상의 판례들을 종합해 보면,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일 뿐만 아니라,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헌법을 지배하는 원천으로 대한민국의 입법•사법•행정의 모든 국가 통치기구는 이를 보호할 의무를 지닌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판례 3에서와 같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위해(危害) 대상을 상세히 명시함으로써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제(諸) 원칙과 자유시장경제의 원칙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을 명확히 하였다.

 

 

<사진 설명> 2025년 3월 학기부터 학교 현장에서 사용될 새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 결과가 공개됐다. 고등학교 한국사의 경우 검정을 통과한 9개 출판사 교과서 모두가 ‘자유민주주의’ 용어를 기술했다. 그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체제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사용해야 한다는 보수 진영과 ‘민주주의’를 사용해야 한다는 진보 진영이 맞서왔는데, 이번에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가 전면 도입되면서 양측 간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2024. 8. 30.)

 

 

③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헌법에 반영된 시점과 관련된 논란에 대해

 

일부 자유를 부정하는 학자들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처음 반영된 개정헌법이 유신헌법이란 이유로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를 명문화하였다고 주장하나, 그 후 두 차례 개정 과정에서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은 유지되었고, 특히 개정 과정에서 오해가 될 만한 표현들은 아래의 표와 같이 모두 수정되었다.

 

7차개정

(1972)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하여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8차개정

(1980)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9차개정

(1987)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위 헌법 전문개정의 내용을 살펴보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유신 헌법이라 일컬어지는 7차 개정에 처음으로 포함된 이래 8차와 9차 개정에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조건(앞부분)과 목적(뒷부분)이 모두 바뀌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최초 반영된 유신 헌법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조건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으로 명시되어 있고,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새로운 민주공화국 건설’로 명시되어 ‘자유’가 추구하는 근본 사상과는 괴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 후 두 차례 개정을 통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조건은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목표는 ‘각인의 기회를 균등’이 하는 것으로 개정되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유신독재 정권 수립을 위한 조건과 목적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여지를 제거하였다. 따라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언제 처음으로 헌법에 반영되었는지는 전혀 논쟁의 대상이 될 수가 없으며, 현재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이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대부분의 헌법학자와 헌법재판소는 일관되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다. ‘자유’를 반대하는 일부 학자들은 자타가 인정하는 전문가 집단이지만 이런 사실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자유’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논리가 헌법 개정 시기와 관련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냉전기 반공(反共)의 산물‘이라는 것이었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조건과 목적은 모두 자유민주주의의 이상에 맞게 개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주장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공산주의 위협이 상존하는 대한민국에서 반공을 지우려는 의도가 아닌지, 나아가 혹시 인민민주주의로의 통일 수용도 가능하다는 의사의 표현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의문을 바탕으로 다음 편에서는 ‘자유’가 배제된 민주주의에는 어떤 위험성이 따르게 되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음)

 

이종명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