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4: ‘자유’가 삭제된 민주주의는 왜 위험한가 ?
민주주의 앞에 ‘자유’를 포함하는 것을 극구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헌법에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없다는 이유와 더불어 민주주의에는 ‘자유’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자유민주주의’라고 규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지구상에는 자유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와 북한의 인민민주주의 등 민주주의에서 파생된 유사 민주주의가 다수 존재하고 있다. 이들 모두가 자신들의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라고 칭하며 절차상으로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따르고 있는 듯하지만 개인의 자유는 존중받지 못하고 정치적 평등 역시 보장하고 있지 않다.
반면 민주주의 앞에 ‘자유’를 꼭 포함시켜야 한다는 측의 논리 중 하나가 ‘민주주의의 위험성’이다. 민주주의의 영어 표기인 democracy는 고대 그리스어인 demos(가난한 다수의 사람)와 kratos(권력 혹은 지배)가 어원이다. 용어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당시의 민주주의는 교육의 기회를 보장받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의 수적인 우세에 입각해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 후, 문명의 발전과 함께 조금씩 긍정적인 의미로 변천하였지만, 여전히 민주주의는 다수(demo)가 지배(cracy)하는 정치 제도를 의미한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대중이 지배하는 정치 체제로, 권한을 행사하는 그 대중이 누군가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구현되며, 대중의 의사는 언제든 특권계급에 의해 교묘하게 조작될 수도 있다. 이런 위험성은 민주주의가 태동하면서부터 제기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에 대한 경고가 지속되고 있다.
① 민주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
민주주의 비판에 앞장선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으로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어리석은 군중에 의해 사형 판결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현실을 개탄하며 민주주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한 정치, 곧 중우(衆愚)정치가 될 것임을 예언했다. 플라톤은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한, 인기에 영합하고자 하는 소위 포퓰리즘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으며, 그릇된 평등관과 엘리트를 부정하고, 시민적 덕목을 경시하며 무절제와 방종으로 치닫는 중우정치로의 변질이 불가피함을 역설하였다.
민주주의에 대한 경고는 19세기에도 알렉시 드 토크빌(1805년생, 프랑스의 법관, 정치학자)과 존 스튜어트 밀(1806년생, 영국의 사회학자, 철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과 같은 대표적인 정치사상가들에 의해 지속되었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오만’에 빠져 자유를 억압할 위험을 경계하면서, 특히 다수가 사악한 이익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면 오도된 평등주의에 빠지거나 민주 독재의 출현을 막기 힘들 것임을 경고하였다. (출처 : <민주주의―밀과 토크빌>, 서병훈 저)
그 외, 미국의 건국 과정에서도 ‘건국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선각자들은 한결같이 민주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새로운 체제의 도입을 추진하였다. 그중 미국의 2대 대통령을 지낸 존 애덤스는 “민주주의는 오래 가지 않는다. 자살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결코 없었다”고 경고했으며, 미국 헌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의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 역시 민주주의를 “일반적으로 그들의 종말이 폭력적인 만큼 존속 기간이 짧았다”고 평가했다. 또한 미국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 역시 인민이 선출한 대표자의 무능과 무지가 가져다줄 국가의 위험성을 지적하였다.
오늘날에도 세계의 여러 석학들은 민주주의의 붕괴를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고, 특히 근래의 민주주의 붕괴는 군사구테타가 아니라 정상적인 민주주의 절차를 통해 선출된 지도자의 손에서 민주주의가 죽어가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출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대니얼 지블랫, 스티븐 레비츠키 공저)
②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한 사례
금세기 민주주의의 최대의 적은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20세기 전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었던 주범 히틀러의 등장이다.
어떤 사람들은 히틀러를 단순한 독재자라고 인식하고 있겠지만, 히틀러는 전 세계가 가장 모범적인 헌법 중 하나로 인정하는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 체제하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등장한 민주주의 제도가 낳은 산물 중 하나다.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과 전 세계에 몰아닥친 대공황의 소용돌이 속에서 1932년 민주적 절차에 따라 독일 국민의 갈증을 풀어줄 인물로 선택받아 총리가 되었고, 1933년에는 국민적 인기를 이용하여 행정부가 법을 입안할 수 있는 일명 ‘수권법’을 국민 투표로 통과시켜 입법부를 무력화시키고 나치 독일을 수립한 후 1934년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사망으로 총통의 자리에 올랐으며, 그 후 일사천리로 전쟁 준비에 몰두하였다.
히틀러 외에도, 국가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대약진 운동으로 수천만 명의 인민을 굶겨 죽이고도, 자신의 실정을 비난하고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홍위병이라는 대중을 앞세워 300여만 명에 가까운 반대자들을 숙청하기도 하였고, 1989년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를 외치는 군중을 탱크로 제압한 나라 역시 정식 명칭이 ‘중화인민공화국’이다. 또한 개인의 자유는 안중에도 없고 오늘 날에도 여전히 인민재판으로 반대자들의 숙청을 일상화하고 있는 북한 역시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다. 아울러 레닌과 볼셰비키당이 러시아 국민의회를 폐쇄하고 일당 독재를 선언하면서도 이를 인민의 이름으로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달성될 것이라고 정당화했던 나라의 명칭 역시 ‘소비에트공화국’으로 이들 모두 대외적으로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공화국’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로 주권이 왕에게 있는 ‘군주국’에 대비되는 통치 행태임)
그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는 히잡을 쓰지 않을 자유마저 존재하지 않고, 종교 또한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없는 나라이며, 특히 2022년 여성의 히잡 착용을 거부하는 시위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공권력에 의해 살해된 23살 여성 마흐사 아미니(Mahsa Amini)의 나라 역시 ‘이란이슬람공화국’으로, 국호에서 드러나듯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최근에도 니카라과 다니엘 오르테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마두로, 칠레의 후지모리, 튀르키예의 에도르안 등의 독재자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양산되고 있다.
이처럼 교과서에 ‘자유’의 표현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근본적으로 자유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지만,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 국가들이 수없이 존재함을 동서고금의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
③ 대한민국이 결코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며 지구상 최악의 인민민주주의 집단과 마주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자유’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이다. 특히 국가의 최고규범인 헌법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단순한 관용구로 해석하여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아니라는 주장이 성립된다면 결국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통일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나아가 인민민주주의도 민주주의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인민민주주의로의 통일도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도 있다.

아울러 2013년, 통합진보당의 행태를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와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를 추구하면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그 전복을 꾀하는 행동”이라고 판시(2013헌다1, 통합진보당 해산과 관련된 헌법재판소 판결)한 대한민국 최초의 정당 해산 명령인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위헌일 수 있으며, 나아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정치 세력의 준동을 막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전복을 꾀하는 일부 용공주의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멍석을 깔아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나아가 민주주의가 인터넷이나 SNS와 같은 정보매체를 통한 가짜뉴스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음을 고려하면, 세계 최고의 IT 강국 대한민국은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도 민주주의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기존의 언론에 비해 유튜브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이 되었고,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딥페이크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오명을 받고 있다. 이런 현실이 자신의 자유만큼 타인의 자유를 소중히 생각하고 다양성과 상호 관용의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확산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연재를 마무리하며....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만능의 보검처럼 생각하지만, 단순한 민주주의는 히틀러의 등장처럼 다수결의 위험성이 늘 상존하며, 유사 민주주의의 감염에 취약하여 언제든 특정 성향의 다수에 의해 개인의 자유는 심각하게 침해당할 수 있다. 민주주의 앞에 ‘자유’의 포함을 반대하는 특정 단체에 소속된 중고등학교 교사들은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내포하는 다양성과 포용적 가치를 좁혀버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하는바, 그들이 주장하는 다양성에 혹시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이 언젠가는 달성해야 할 통일의 과업은 어떤 경우에도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대명제를 고려한다면 더 이상 민주주의에 ‘자유’를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며, 이 글의 주제인 ‘왜, 자유민주주의여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이종명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