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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정상회담이 두려운가요? 날은 밝기 전이 가장 어두운데

북러정상회담이 두려운가요? 날은 밝기 전이 가장 어두운데

 

이정훈 명지대 객원교수

 

전술핵공격잠수함을 진수한 김정은이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을 만났다. 푸틴은 북한을 답방할 것

이라고 한다. 중국을 향해 “대만해협 현상을 힘으로 변경하려고 하지 말라”고 한 윤석열 대통령이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공급받는 것은 러시아도 참여한 UN 안보리의 대북결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남북한 지도자가 참여한 동북아와 세계 정치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2차대전의 ‘연합국’이 국제기구 UN

지금의 국제정치는 ‘2차 대전 체제’란 데 주목해야 한다. 2차 대전은 오스트리아와 주데텐란트(체코의 한 지역)를 합병한 독일이 폴란드에 이어 소련을 침공하고,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 대응했던 프랑스가 독일에 먹히자, 프랑스와 같이 참전했다 밀리게 된 영국이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고 미국이 수락함으로써, 또 중국을 침략하던 일본이 미국도 공격함으로써 확대된 전쟁이다. 미국은 이 전쟁에서 일본 독일은 물론이고 이탈리아까지 ‘추축국’ 전부와 유일하게, 끝까지 싸워 승리했다.

가장 인상적인 승리는 원폭 투하로 일본을 항복시켜 2차대전을 종결한 것이다. 그리고 만든 것이 UN과 NATO, 미일과 한미동맹이다. 영국의 요청으로 참전을 결정할 때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영(美英) 연합을 united nations, 줄여서 UN으로 표현했다. 동맹국이나 연합국을 표현하는 일반적인 영어는 allied nations인데 다른 단어를 고른 것. 미국은 시대나 구성이 바뀌면 같은 일을 하는 조직인데도 다른 용어로 작명하는 습성이 있다. 미국은 1차 대전 연합국을 associated powers, (한미)연합사는 combined forces command로 불렀다.

1943년 여름 시칠리아에 이어 이탈리아의 남부를 점령한 미영의 지도자 루스벨트와 처칠은 독일과 일본도 패퇴시킬 수 있다고 보고 11월 말, 1937년부터 일본의 침공을 받고 있던 중국의 장개석을 카이로로 불러 연합국에 참여시키고 바로 테헤란으로 날아가 침공한 독일군을 밀어내기 시작한 소련의 스탈린을 만나 역시 연합국에 참여시켰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전엔 드골 소장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 망명정부도 연합국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독일과 일본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해방시킨 나라와 다른 국가를 참여시켜 2차대전을 끝냈을 땐 연합국을 51개국으로 불렸다. 1945년 10월 미국은 이 51개 연합국으로 ’국제기구‘ UN을 만들었다. 1951년엔 이 중 46개 나라와 같이 일본을 상대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었다. 이 체결에 중소(中蘇)는 빠졌는데, 이는 심각했던 당시의 국제정치 때문이었다. 연합국은 강화조약을 맺지 않고 이탈리아와 서독을 NATO에 가입시켰는데, 이것도 치열했던 미소(美蘇) 냉전 탓이다.

 

NATO와 미일·한일동맹으로 UN 체제 맹점 보강

양대 연합국인 미소가 분열하는 냉전은 독일군을 밀어내며 베를린까지 진격한 소련이, 그 과정에서 해방시킨 5개 동유럽국가와 동독을 공산화했기에 일어났다. 1947년 미국 대통령의 고문인 바루크가 전쟁하지 않는 이 대립을 ‘냉전(cold war)’으로 부르고, 월터 립먼 기자가 같은 제목의 책을 내면서 냉전은 연합국 분열의 상징어가 됐다. 1949년 4월 미국이 서유럽 연합국을 묶어 반공(反共)동맹체인 NATO를 만들자 넉 달 뒤 소련이 핵실험을 했다. 이 핵실험으로 열전(熱戰)인 3차대전이 일어날 것 같자 스탈린이 성동격서를 했다.

미소 군정 문제로 대립해 분단된 한반도에서 김일성을 사주해 전쟁을 일으킨 것. 한반도는 NATO 지역이 아니니 미국은 UN을 동원해야 했는데, UN 결정 과정에 소련이 기권했기에 미국은 UN을 이끌고 북한군을 막을 수 있었다. 2차대전 연합국 중 반공세력은 대한민국에서 UN군으로 뭉치게 된 것. 이는 미국의 우위를 보여준 것이기에 1951년 9월 미국은 중소(中蘇)의 불참에도 일본을 상대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을 수 있었다. 이 조약으로 일본은 ‘군대 없는 나라’가 됐기에, 미국은 안보조약을 맺어 일본을 지켜주기로 했다.

미국도 6·25전쟁이 3차대전으로 비화하는 것을 피하려 했다. 때문에 38선 부근에서 전쟁을 끝내려 하자 이승만이 영리하게 대응했다. 미국과 방위조약을 맺고 UN군 사령부를 한국에 두는 조건으로 이 정전을 수용했다. 그리고 심각히 흔들렸던 2차대전 체제는 안정화의 길로 갔다. 영불중에 이어 인도, 파키스탄,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베트남전 등이 일어났지만, 이 체제는 깨지지 않았다. 그리고 1990~91년 이 체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동유럽의 공산국가와 소련이 무너졌다.

냉전이 깨지는 거대한 민주혁명을 치렀음에도 이 체제가 유지된 데는 미국이 소련에서 독립한 비(非)공산 러시아에 5대 연합국 지위를 그대로 준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NATO를 확장해 러시아를 소련보다 못한 나라로 만들었다. 패권을 강화한 것. 이에 대한 반발로 지난해 러시아는 비(非)NATO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이 침공은 러시아를 소련과 같은 지위로 대해달라는 아우성이 분명하다.

중국은 소련과 거리를 뒀기에 냉전 붕괴기(期) 경제발전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주변국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일대일로’를 하고, 미국엔 ‘신형대국관계’를 요구했다. 과거의 소련처럼 미국과 세계문제를 논의할 자격을 달라고 한 것. 핵을 가진 북한도 모방을 했다. 이를 받아들이면 미국은 어렵게 구축한 패권을 놓치게 된다. 미국이 이를 외면하면서 지금의 위기가 본격화했다.

 

치열한 냉전 끝에 온 민주혁명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NATO로 견제했는데, 이는 NATO 회원국을 세계문제 논의 파트너로 택했다는 뜻이 된다. 중국과 북한의 위협은 미일·한미동맹으로 대처하려 했는데, 그 시기 한국에서는 문재인 정권이 등장해 어깃장을 놨다. 때문에 호주(濠洲)와 인도를 끌어들여 쿼드를 만들었지만, 인도는 반중(反中)은 해도 반러는 하지 않으려 했다. 영국과 호주를 묶어 AUKUS도 결성했지만 호주와 영국은 너무 후방에 있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정권이 바뀌고 ’아메리칸 파이‘를 부른 윤석열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온 덕에 캠프데이비드에서 한미일공조를 만들 수 있었다. 한국은 영독불일과 비슷한 국방비를 쓰는 군사강국이다. 한미일은 세계 GDP의 32%를 차지하니 중러는 캠프데이비드 체제 등장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세계문제를 중러가 아니라, 한국이 초청된 G7 확대 정상회의와 한일호(濠)가 포함된 NATO 확대 정상회담으로 결정하려고 했다. 중러의 약을 올린 것.

2차대전 연합국이 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로 나눠 냉전할 때 UN은 무력화됐었다. 지금의 세계는 G7+NATO+한호 대 아직 공조체가 되지 못한 북중러가 맞서는 모습이라 신냉전이라고 한다. 주목할 것은 냉전과 신냉전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 체제인 UN 체재는 약해지긴 해도 건승하다는 사실이다. 북중러는 이 체제를 부수고 원하는 체제를 만들 만큼 강력하지 않다. 잘못 도전했다간 2차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보다 더 한 나락에 떨어질 수가 있다. 미국과 그 동맹국의 힘은 더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美獨공조로 본 한미공조

그래서 러시아는 비NATO인 우크라이나는 평화유지군 파병이란 이름으로 공격하고, 시진핑은 외교, 국방장관을 경질하며 권력 강화에 더 힘을 쏟는다. 1991년의 민주혁명은 지금보다 더한 냉전을 치르다 맞은 것이었다. 그때 서독은 평화통일의 기회를 잡았다. 서독의 콜 총리가 미국의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더할 나위 없는 공조를 한 것이 기반이 됐다. 서독 정보부인 BND와 미국의 CIA는 동독을 무대로 치열히 민주화공작을 했다. 이것이 독일에게 당했던 영불에게는 안보위기를 해소하는 계기가 됐기에, 양국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하는데 반대하지 않았다.

그 시기 서독은 최강의 경제국이었고 소련은 미국과 군비경쟁을 하는 냉전에 밀려 심각한 경제위기에 빠져 있었다. 미국의 중재로 서독으로부터 100억 달러의 차관을 받게 된 소련은 ‘동독을 흡수하더라도 소련을 적대시해서는 안된다, 다시 침략전쟁을 하면 안된다’는 조건으로 서독의 흡수통일을 용인했다. 지금의 신냉전도 북중러가 경제위기 등 심각한 위기를 맞아야 종식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G7과 NATO, 한일호만 동원하지 않는다. 최근 미국은 한국이 동결한 원유대금 70억 달러를 이란에 제공하게 했는데, 이는 반미국가 이란이 북중러와 협조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할 것이다. 1991년 냉전이 끝날 무렵부터 미국이 MD를 발전시켜왔다는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MD는 핵전인 3차대전을 막을 수 있는 체제이다. UN 체제는 중러에게 경제 국력에 비해 높은 지위를 주고 있는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불만스럽지만 지금이 더 힘들어질 미래보다 낫다면 불만국가는 세력전이(轉移)를 시도하지 못한다.

패권국은 이를 알기에 동맹국과 함께 도전국을 더 찍어 누른다. 1991년 동유럽 공산국가와 소련이 무너진 것 같은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위기 끝에 기회가 온다. 신냉전으로 유럽과 동북아, 한반도에서는 위기를 알리는 비명이 높아지겠지만 여명도 함께 밝아올 것이다. 김정은과 푸틴의 유착을 기회로 보고 예의주시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사진출처: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