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체성과 자유주의 헌법정신
김기수(워치앤액션 대표, 변호사)
헌법은 한 국가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지표다. 한 국가의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으면 국론은 분열되고 지속 가능한 국가로 영속하기 어렵게 된다. 개인도 마찬가지로 자기정체성이 불분명하면 그 인생도 불행해지기 십상이듯 한 국가도 국가정체성이 불분명하면 그 국가의 안보도 그 국민의 행복도 장담하기 어렵다. 헌법은 국가 정체성의 요체이므로 헌법정신을 명확히 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안보와 국민의 행복에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프랑스 정치철학가 샤를르 몽테스키외는 개인의 자유와 번영을 위한 권력분립론을 주장했다. 그는 국가의 강제와 횡포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헌법이며 개인의 자유와 법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의 번영은 비옥한 땅 때문이 아니라 ‘자유’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주권자인 국민이 하고 싶은 것을 행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이해하는 ‘자유’인데 이는 매우 집단적이고 추상적인 ‘자유’다. 몽테스키외는 이런 ‘자유’는 잘못된 것이라 주장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에 대한 이해와 개념정의는 다양하다.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정의 매우 다양
칸트는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정의로운 국가는 폭력으로부터 개인의 재산과 자유를 가장 안전하게 보호하는 국가다’ ‘재산권의 보호는 법질서의 본질적 요소이고, 자유와 재산권이 없는 사회는 진정한 의미의 법이 없는 사회다’ ‘국민 개개인의 행복의 원칙을 국가가 정해서는 안된다’면서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려는 국가는 독재로 귀결된다는 국가론을 주장했다.
결국 정의로운 국가란 ‘국민 개개인에게 스스로 행복해지는 권리가 보장되고, 국가는 개인의 신체와 재산의 안전을 보장하고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국가를 말한다.’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헌법은 정치질서를 집약한 것이다. 권력기구를 어떻게 구성하고 운영할 것인지, 누가 법을 만들고 누가 그 법을 집행하는 지를 정하는 것이 정치질서다. 이러한 정치질서형성을 위한 의사결정의 방법을 정한 것이 바로 헌법이다. 따라서 국민 누구나 헌법을 잘 이해하고 헌법적 마인드를 가질 필요가 있다. 한 국가가 번영하는지 쇠락하는지는 그 국가의 헌법을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동안 국민들 대부분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에 내심으로는 동의하면서도 ‘자유’에 대해서는 그 표현이나 주장에 매우 샤이(샤이보수)해하고 인색해왔다. 그렇게 된 데에는 가치개념인 자유민주주의를 가치중립적인 ‘민주주의’로 환원시키려는 세력들이 자유의 가치를 ‘개인주의’로 공격해온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심지어 인민민주주의를 민중민주주의 또는 민족민주주의로 포장한 채 ‘민주주의’로 가장하여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을 끊임없이 벌여왔다.
헌법은 정치질서의 집약
따지고 보면 자유민주주의는 벤담, 제임스밀과 같은 공리주의자들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서로 타협하거나 동거하기 어려운 개념인데 이를 하나로 묶어 자유민주주의라는 호칭으로 헌정주의와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데서 비롯됐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복합적 언어는 자유주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가끔 용어혼란전술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법’을 공격하면서 ‘법’이 민중을 억압하고 외세에 부화뇌동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들은 국내법이고 국제법을 가리지 않고 ‘법’적대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는 것이다.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시비를 일삼아온 세력들은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작금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너무나 교조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다수가 원하면 좋은 법이라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기 위한 개념으로 보지 않고 다수의 지배가 정당하다는 교조적 민주주의의 시각에서 보면 다수의 이익을 가져오는 것은 무조건 선이되기 때문에 포퓰리즘이 만연하게 되고, 분배를 중시할 수밖에 없어 사회의 활력이 떨어지게 된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봉사하는 권력은 점점 더 개인이나 경제에 깊이 개입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권력의 행사자인 정치인과 관료는 국민 개개인에 대한 봉사자가 아니라 특정 다수의 표를 가진 이익집단의 이해를 대변하게 된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가 가치개념이면서도 ‘자유주의’에 봉사하는 개념이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적은 권위주의이고, 자유주의의 적은 전체주의이고, 민주정부는 전체주의와 친화적이고 자유주의는 권위주의 정부와 친화적이라는 점에서 자유주의만 민주주의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반면에 자유주의는 ‘정의’의 관점에서 ‘법’을 다룬다. 자유주의는 권력이 다수의 지배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어떻게 권력이 행사되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국가가 나가야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하게 한다.
국가의 지속가능은 정체성 확립이 선결 조건
자유주의는 국가권력의 제한을 항상 염두에 두고 개인의 자유의 신장을 위해서 노력하지만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보다는 다수의 지배와 일반의지에 집착하며 법을 수단시한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가 되려면 일정부분 민주주의는 제약되어야 한다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를 목적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헌법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헌법은 그 국가의 정체성을 가장 잘 알게 해주는 표지다.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칙으로 국가권력이 근거이자 국가권력의 통제 원리이기도 하다. 국가가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국가의 정체성 확립의 문제이다.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으면 개인이나 국가나 혼란과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고 나아가 지속가능한 미래도 보장받기 어렵다. 국가 정체성의 확립은 과거의 역사를 이해하고 과거를 현재에 통합시키는 과정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헌법에 명시해두는 것은 좋은 통합의 과정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역사적 사건을 헌법에 명시하는 것은 국민통합과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헌법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사진출처: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