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뉴스1>
북한이 5월 28일부터 6월 9일까지 4차례에 걸쳐 남한 전역에 오물풍선을 살포했다. 오물풍선 살포 기간 중에 서북 도서 일대에서 GPS 전파 교란을 했고 5월 30일에는 김정은 지도하에 이동식발사대(TEL) 18대가 각기 1발씩 600미리 방사포(KN 25)를 동해 방향으로 일제히 쏘아 올리는 ‘위력시위사격’을 실시했다.
북한이 이런 도발을 한 결정적인 이유는 5월 27일 발사에 실패한 ‘정찰위성’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2번의 실패 끝에 세번 만에 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지구 궤도에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고무된 북한은 2024년에 3기의 정찰위성을 추가로 발사하겠다고 공언했다. 북한 주민들의 기대도 컸다. 그런데 1년의 반이 다 지난 시점에 쏘아 올린 정찰위성이 발사 2분 만에 폭발해 버렸다. 이에 북한은 뒤숭숭한 국면을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내부 단속이 필요했는데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었다. 마침 한국의 탈북단체가 정찰위성 발사 10여 일 전에 김정은 가계도 등을 포함한 전단, 한국의 발전상, K-팝, 트롯 가요 등을 담은 USB, 그리고 1달러짜리 등을 담아 20개의 대북 풍선을 보낸 바 있다. 북한은 이를 오물풍선을 살포의 좋은 핑곗거리로 삼았다.
정찰위성 발사 실패가 오물풍선 도발의 원인
북한은 오물 풍선을 살포하기 시작했다. 5월 28일부터 6월 2일까지 1, 2차 살포시에는 오물과 쓰레기 15t을 3,500여 개의 풍선에 담아 살포했다고 김강일 국방성 부상(차관)이 담화를 통해 밝혔다. 6월 8, 9일의 3, 4차 살포 규모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확인해 주었다. 김여정의 6월 9일 담화에서 오물 규모는 7.5톤이었고, 풍선 개수는 1,400여 개라고 했다. 1, 2차 살포시 한국은 1,000개 정도를 수거했고 3, 4차 살포시에는 370여 개를 수거했다. 여름에는 주로 남풍이 불어 북한이 풍선을 보내기에 적합하지 않다. 북한의 살포량과 한국의 수거량이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은 북한이 숫자를 부풀려 과장한 측면도 있고 한국이 채 수거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바람의 영향으로 대부분 북한 지역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남도발 중에서도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전에도 북한은 풍선을 통해 대남전단을 살포한 바 있다. 전단 내용은 한국 정부를 비방하거나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것이 주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단은 없고 폐비닐, 폐플라스틱 등 쓰레기와 함께 거름 등 오물을 담아 살포했다. 북한은 이전부터 한국의 탈북단체가 보내는 전단과 USB 등을 쓰레기로 규정한 바 있다. 그런데 북한이 정말로 쓰레기 등 오물을 보낸 것이다.
북한은 오물풍선 살포를 맞대응적 성격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다른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오물풍선 살포를 통해 남남갈등을 노렸다. 오물이 떨어지면 이것을 두고 한국 사회 내에서 탈북단체의 대북풍선 보내기에 대한 찬반 여론이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른 하나는 유사시 풍선이 어디까지 날아가는지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풍향과 풍속은 풍선의 종착지를 결정한다. 풍선 안에는 오물이 있었지만, 유사시에는 여기에 생화학 물질이나 폭발물 등을 담을 수도 있다. 북한이 1, 2차 오물풍선 살포시 어떤 풍선은 지리산까지 날아간 것도 있다. 이번 오물 풍선처럼 20Kg 급의 풍선이라면 살상용 무기도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량국가 타이틀에 ‘오물공화국’ 별칭 얻어
풍선 내용물도 1, 2차 살포 때는 오물이 주류였지만 3, 4차 때는 주로 폐지였다. 북한은 오물을 보낸 것이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정작 한국 국민은 북한의 행위를 반인륜적으로 생각하고 북한을 더 증오하게 되었다. 국제사회도 북한을 ‘오물공화국’이라고 불렀다.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불량국가라는 타이틀에 이어 또 하나의 별칭을 부여한 것이다. 북한이 3, 4차 살포시에는 오물 대신에 종이 쓰레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물풍선에 대해 군은 상공에서 격추하는 대신 지상에 떨어진 것을 수거하는 방식을 택했다. 상공에서 격추하면 탄환이 민가 지역에 떨어지거나 북한 지역으로 월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가에 떨어지면 사상자가 발생하거나 재산상의 피해가 발생하게 되고 월경하면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군은 오물풍선 떨어진 현장에 화생방탐지반과 폭발물처리반을 보냈다. 화생방탐지반을 보낸 이유는 오물 풍선에 생화학 물질이 있거나, 생화학 물질에 오염된 물질이 있는지 탐지하기 위함이었다. 폭발물처리반을 보낸 이유는 오물 풍선에 폭발물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군은 확인된 오물 풍선 대부분을 안전하게 수거했다.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것이고, GPS 교란은 국제 안전 규범을 위반한 것이며, 오물풍선 살포는 반인륜적인 저급한 행위였다. 또한,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는 무력행위 금지와 함께 적대행위를 금지하는 국제법 위반이자 정전협정 위반이다. 북한이 살포한 20㎏급의 오물풍선은 우리 국민을 죽게 하거나 상해를 입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물건에 손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북한의 이런 도발 행위에 대해 완벽한 대비태세 구축과 함께 대응 수위를 높여가기 시작했다. 우선, 정부는 5월 31일 ‘북한이 감내할 수 없는 조치를 취할 것’임을 경고했다. 그런데도 북한이 도발을 지속하자 대통령실은 6월 2일 국가안보회의 상임위원회를 개최하여 북한의 몰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도발 행위를 규탄하고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들에 착수하기로 했다. 이 조지에는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도 포함되어 있었다.
남북관계발전법 제34조 1항과 2항은 확성기 방송과 시각매개물(게시물) 게시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동법 제23조 2항에는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기간을 정하여 남북합의서의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도록 예외규정이 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6월 4일 국무회의를 통해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 9·19 군사합의서의 효력을 전면 중지시켰다. 남북간에 체결된 9·19 군사합의서는 2018년 국무회의와 대통령 재가를 통해 공포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효력 정지도 국무회의와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작년 11월 9.19 군사합의 폐기를 전격적으로 선언한 바 있지만, 한국은 법치국가답게 법률적 절차에 따라 군사합의서의 효력을 정지시켰던 것이다.
6년 만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그런데도 북한이 제3차 풍선을 살포하자 정부는 점차 대응 수위를 높였다. 국군은 6월 9일, 6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해 약 2시간 동안 대북 방송을 했다. 방송 내용은 국제 뉴스와 함께 삼성전자의 휴대폰 출하량 전 세계 1위 소식, 기상예보, 그리고 BTS의 ‘봄날’ ‘버터’ ‘다이너마이트’ 등을 송출했다.
북한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김여정은 담화를 통해 대북전단과 확성기 방송을 병행한다면 새로운 대응을 목격할 것이라고 위협하면서도 ”빈 휴지장만 살포했을 뿐 그 어떤 정치적 성격의 선동 내용을 들이민 것은 없다.”고 했다. 비아냥거림도 없었고 과거에 비해 발표 내용의 수위도 상당히 낮았다. 이에 정부도 북한의 태도 변화에 따라 확성기 재개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확성기 방송을 일단 중지했다.
북한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두려워한다. 전선에 있는 북한 장병들이 자유의 소리 방송을 듣고 세계와 북한 체제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북한은 최근 한류를 접한 북한 주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청년교양보장법,’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을 만들어 북한 주민을 통제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 말투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거나 유포할 경우, 최대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전선에 있는 북한 장병들과 인접 주민들이 한국 아나운서들의 부드러운 말투에 매력을 느끼고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진실과 자유를 알게 된다면, 북한 당국은 이를 체제 위협으로 인식할 수 있다. 더군다나 전선에서 복무하고 있는 병사들은 장마당을 통해 한류를 접해 본 이들이 대부분이기에 더욱 그렇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의 아킬레스건
북한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보여준 극명한 사례가 있다. 2015년 8월 북한이 매설한 목함지뢰에 의해 한국군 장병 2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북한은 자신이 저지른 사건이 아니라고 발뺌했다. 이에 국군은 목함지뢰 파편과 함께 목함지뢰가 터지는 영상을 공개하면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그러자 북한은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면서 대북 확성기 방송 시설을 향해 14.5mm 고사포 1발과 76.2mm 평곡사포 3발을 발사했다.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국군은 이에 대응하여 북한군 철책선 부근에 K9 자주포 28발을 발사했다. K9 자주포는 떨어진 지점에 다시 떨어지고 또다시 떨어지는 정밀성을 보여주었다. 북한이 놀라 서둘러 회담을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북한의 대남담당 비서 김양건과 총정치국장 황병서, 한국의 김관진 국방장관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간의 2+2회담이 개최되어 ‘무박 4일’ 간의 마라톤 협상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북한은 국군 장병의 부상에 대한 사과를 전제로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요구했다. 자신의 도발에 대해 사과하는 법이 없는 북한이 문서상의 기록으로 사과를 한 것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의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던 사례였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전선의 북한군과 주민의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고 확산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니 북한으로선 아킬레스건과 다름없다. 북한의 도발 여부와 수준에 따라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될 것이다. 북한도 이번 기회에 한국 정부의 의지를 충분히 인지하였기에 도발을 자제하리라 기대해 본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