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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의 영웅들은 어쩌다 친일파가 되었는가?(1)

기획시리즈 1.

 

잠시 잠잠하던 친일논쟁이 광복절을 계기로 다시 수면으로 떠 올랐다. 자그마한 계기만 있어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친일 논쟁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삭일 수 없는 것은, 이 논쟁의 종착점이 항시‘대한민국의 부정’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부정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친일파가 득세한 나라라는 주장도 모자라, 죽음을 무릅쓰고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켜낸 6.25전쟁의 영웅들까지 친일파로 내몰고 있으며, 이런 현실을 접할 때마다 안타까움을 넘어 때론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이런 현실을 바라보며, 우리 필진은‘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밝히고자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재 조명하는 연재물을 지난 5회에 걸쳐 게시한 바 있으며, 이번에는 그 연장선상에서‘백선엽 장군을 포함한 6.25전쟁의 영웅들이 어쩌다 친일파로 몰리게 되었는지?’그 실상을 3회에 걸쳐 파헤쳐 보고자 한다.

 

이 연재물을 통해 일방적으로 친일파로 매도당하고 있는 6.25전쟁 영웅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거짓 선전․선동의 실태를 이해하여 국민 통합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밀알이 되길 희망한다.

- 편집자 주 -

 

 

진보 성향의 민간인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6.25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 등이 포함된 친일인명사전(親日人名辭典)을 발간하였다.

 

이들이 밝힌 친일파 선정 기준은 크게 일제강점기에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개인별 직위)’와 ‘무슨 일을 하였는지(개인별 행적)’이다. 아마도 이 기준 중 전(前)자는 군인이나 공직을 맡았던 인물에 대해, 후(後)자는 주로 문화 · 예술인과 같은 인물들에게 적용한 것 같다.

 

이 중 군인들에게 적용된 기준은 만주국 군대를 포함하여 일본제국주의 군대에서 소위 이상 지휘관으로 근무한 모두를 친일파로 규정하였으며, 백선엽에게는 추가로 ‘간도특설대 장교로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했다.’는 이유를 적시함으로써 ‘개인의 직위와 행적’ 모두를 적용하였다.(일반적으로 ‘조선인 독립운동가를 탄압했기 때문에 친일파’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것이 아님에 유념해야 함.)

 

이들이 국민적 공감대도 없이 설정한 그들만의 기준으로 수많은 6.25전쟁의 영웅들이 친일파라는 오명을 쓰고 있지만, 진실 규명을 위한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지금처럼 이들의 일방적 주장을 방치한다면 공산주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낸 전쟁영웅들은 역사에서 사라질 것이고 결국 공산주의 확산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이러한 암담한 사태를 막기 위해 민족문제연구소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기준 중 군인과 백선엽에게 적용한 ① 만주군 소위 이상 군인을 친일파로 분류한 이유가 타당한 것인지? ② 백선엽 장군의 간도특설대에서 조선인 독립군은 무력 탄압했다는 주장이 과연 역사적 사실에 부합된 것인지? 그리고 ③ 백선엽 장군을 포함한 6.25전쟁의 영웅들은 어떻게 대한민국을 지켜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이야기 : 만주군과 일본군에서 근무한 소위 이상 군인은 모두 친일파 ?

 

일본이 조선 합방 후 통치 수단의 하나로 행한 정책 중 하나가 조선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계급 사회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던 서민들에게 ‘신분 상승의 길’을 열어주어 우호 세력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일본이 조선인을 대상으로 시행한 신분 상승의 길은 ‘고등관’제도로서, 고등관은 공무원의 경우 현재의 행정고시나 사법고시와 유사한 고등 문관 시험을 합격한 후 1년 동안 시보 생활을 하면 그 자격이 주어지고, 무관의 경우는 사관학교를 졸업하거나 장교가 될 수 있는 학교를 나와 소위로 임관하면 고등관 자격이 주어졌으며, 이 제도는 만주로까지 확대되었다.

 

대륙 침략의 야욕에 불타던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켰고, 괴뢰정권을 세운 후 만주를 영구히 자신들의 지배권 아래에 두기 위해 만주에 수백만 명의 일본인을 이주시키려 하였고, 만주에 군관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일본인의 만주 이전이 뜻대로 되지 않자 조선인의 이주를 권장하였으며, 만주에 위치한 군관학교의 문호도 조선인들에게 개방하였다. 만주 군관학교의 문호 개방으로 조선의 계급제도에서 벗어나 신분 상승을 꿈꾸던 젊은이들은 만주로 향했고 만주의 신경군관학교와 봉천군관학교에는 지원자가 몰렸으며, 백선엽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백선엽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 평안남도 강서군(현 남포시)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7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직에 종사했다. 하지만 군인이 되고 싶었던 백선엽은 만주 군관학교를 거쳐 1943년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백선엽을 포함하여 당시 만주의 군관학교 입학을 희망했던 사람들의 지원 이유가 단순히 일본군에 종사하기 위함이라 단정하지만, 당시 군관학교에 입학을 장려했던 홍사익(일본군 중장)의 격려문을 보면 생각을 달리하게 된다.

 

”조선 출신 여러분을 충심으로 환영한다. 여러분이 여기서 할 일은 지극히 간단 명료하다.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하나 빠짐없이 다 배워라. 이것 저것 가리지 말고, 누에가 뽕잎 갉아 먹듯이 모든것 모조리 먹어 치워라. 언젠가는 실력발휘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홍사익은 일본 육사 출신으로 육군 중장에 이른 인물로, 친일파 분류에 이견이 없지만,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재직 시 지속적으로 독립군과 교류하였으며 물신 양면으로 일본인의 눈을 피해 독립군을 도운 인물이라는 양면의 평가가 있음)

 

위의 격려문을 자세히 보면, 군관학교에서 열심히 배워 익혀야 하는 이유는 훗날 독립을 준비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런 격려가 훗날 현실이 되어 군관학교 출신들은 대부분 해방 후 그들의 경험을 살려 대한민국 국군의 근간이 되었고, 공산주의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낸 6.25전쟁의 영웅이 되었다.

 

백선엽 장군도 이 중 한 명이고, 영화 국제시장을 통해 잘 알려진 흥남 철수 작전 시 육군 1군단장으로 10여 만 명의 피난민을 미국 함선에 태워 자유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 ’크리스마스 기적‘의 주역 김백일 장군 역시 만주 군관학교 출신이다. 또한 참모총장 재직 시 독립군 출신을 대거 기용하고 군인의 정치적 중립을 유난히 강조하였을 뿐 아니라 1983년 사망 시에는 통장에 단돈 26만 원을 남기고 운명을 달리 한, 대한민국 군인 중 최고의 참 군인으로 평가받는 이종찬 장군도 일본군 장교 출신이다.

 

이런 여러 사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위 민족 문제를 연구한다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백선엽을 포함한 모든 장교를 친일파로 규정하였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누가 친일파로 분류되었는가’ 보다 ‘왜, ‘이런 기준을 설정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제강점기에 소위를 포함하여 고등관이 된 사람들은 그야말로 각고의 노력 끝에 지긋지긋한 당시의 계급제도를 뚫고 자신의 삶을 개척한 인물들이다. 아울러 이들은 신생 만주국에서 공무원이나 군인으로 재직하면서 국가 운영과 군대 지휘 기법을 배워 해방 후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행정을 담당하고 국방을 책임지며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했다. 해방 후 문맹율 78%, 고등교육 이상을 수료한 사람이 약 32,000여 명에 불과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이들을 대체할 수 있었던 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시절 고등관 이상 모두를 행적에 관계없이 친일파의 가시관을 씌운 것은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득세한 나라라는 북한의 주장과 이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해방 후 친일파로 분류된 이들은 북한 정권에 합류한 공산주의 계열의 무리들과는 달리 반공(反共)과 반소(反蘇)의 신념으로 공산주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낸 전쟁영웅들이다. 이런 분들의 유해를 국가 유공자 묘역에서 파헤치겠다며 법까지 만들겠다고 겁박하고 있다. 파묘법 제정까지 거론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추구하는 바는 대한민국 내에서 아예 ‘반공’의 사상을 지워 버리겠다는 의도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만약 그들의 구상대로 파묘법이 발효되어 실현된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사람들은 친공(親共)을 신념화하고 있는 대한민국 내 친북 인사들과 단 한시도 한반도 적화 야욕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북한 정권이라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백선엽을 포함한 전쟁영웅들을 친일파로 내모는 그들의 저의를 세상에 알리고 그분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은 곧 대한민국의 적화를 막는 길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다음 편에서는 백선엽 장군이 근무한 만주에서의 항일운동의 실체와 백선엽 장군의 행적 등을 다룸으로써 친일파 규정의 저의에 대해 알아보겠음)

 

이종명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