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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과 법치주의

작년 말 느닷없이 발생한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이에 헌법재판소(헌재)는 현재 탄핵심판을 진행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 제77조에 근거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한다.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재의 탄핵심판은 모두 헌법에 따라 이루어지는 조치들이다. 이런 연유에서 작금 헌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본고에서는 헌법의 개념과 기능, 우리 헌법상의 국가정체성, 국가이념과 헌법수호 장치, 헌법의 기본원리와 법치주의, 한국의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과제에 관해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Ⅰ. 헌법의 개념과 기능

 

헌법(constitution)은 국가의 근본법으로서 국가의 통치조직과 통치작용의 기본원리를 정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실정법이다. 헌법에는 국가이념과 국가정체성, 국가목표와 국가의 기본질서가 명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국민들이 향유하는 기본권 내지 인권의 목록이 자세하게 규정되어 있다. 이에 따라 헌법은 인권장전(人權章典)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한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도 마찬가지이다.

헌법은 그 구성원의 다양성과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란 정치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국민협약(國民協約)’이라 할 수 있다. 통합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모든 국가기관과 국민을 구속한다. 또한 헌법은 나라의 근본법 내지 최고법이기 때문에 모든 하위법(법률, 명령, 규칙, 자치법규 등) 제정의 법적 근거를 제공한다. 그 당연한 결과로 헌법에 반하는 내용의 법률이나 명령 등은 위헌․위법한 것이 되어 무효가 된다.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7월 17일 처음으로 제정되었고, 이후 9차에 걸쳐 개정된 바 있다. 현행 헌법은 1987년 10월 개정되어 1988년 2월 시행되었다.

 

Ⅱ. 대한민국 헌법상 국가정체성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란 대한민국이 국가로서 성립하면서 본디 갖고 있는 고유한 성격을 가리킨다. 헌재는 2004년 10월 21일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위헌 확인 결정 사건(사건번호 2004헌마554)」에서 “국가의 정체성이란 국가의 정서적 통일의 원천으로서 그 국민의 역사와 경험, 문화와 정치 및 경제, 그 권력구조나 정신적 상징 등이 종합적으로 표출됨으로써 형성되는 국가적 특성”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국가정체성은 ‘국가의 기본(國基)’을 정한 헌법의 여러 곳에서 명기되어 있다. 첫째, 국호(國號)는 대한민국이다(제1조 1항). 둘째, 국가형태는 민주공화국이다(제1조 1항). 이는 군주국이나 소수의 귀족에 의해 통치되는 귀족국을 배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국가이념은 자유민주주의이다(헌법 전문과 제4조, 기본권 조항 등 헌법 전체에서 연역). 넷째, 주권자는 국민이다(제1조 2항). 다섯째,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이다(제3조). 여섯째, 경제질서는 사회적(수정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함) 시장경제질서이다(제23조 및 제119조 제1항).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은 국가형태 면에서는 ‘민주공화국’이고, 국가이념 내지 체제가치 면에서는 ‘자유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곧, 남녀노소의 차이, 세대 갈등, 빈부격차를 초월해 우리 국민을 하나로 연결하는 국가정체성 혹은 정서적 통일의 기반은 “자유민주주의 나라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이인선 의원(왼쪽)과 장동혁 의원이 2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정당한 방어권을 보장하라', '헌법재판소 졸속심판 국민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Ⅲ.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수호 장치

 

자유민주주의는 정치적으로 자유주의(liberalism)와 민주주의(democracy)의 결합이다. 자유주의는 자유와 인권, 인간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개인의 창의와 자발성을 우선시하는 이념을 말한다. 따라서 국가와 사회제도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개성을 꽃피우기 위해 존재한다고 본다. 이는 ‘내용’을 구성하는 이념이다. 민주주의는 ‘민(民)을 주인으로 삼는’ 주의(ism)요 정치사상이다. 어원적으로 보면, 국민(Demos)과 통치(Kratia)의 합성어로 결국 국민의 지배 혹은 다수의 지배를 일컫는다. 민주주의는 ‘형식’을 이루는 이념이며, 수단적 내지 절차적 이념으로 성격 지워지기도 한다. 요컨대,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한 정치원리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여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을 세우고 민주적 절차 아래 다수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들이 입헌주의의 틀 내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에 의해 향도되고 그 내용이 채워지며 발전되어 나가는 민주주의다. 인류 역사에서 지금까지 수많은 정치이념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바 있다. 이 중에서도 자유민주주의가 오늘날 가장 나은 정치이념이자 인간의 생활양식으로 간주된다. 그 이유는 자유민주주의가 자유와 인권의 존중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터 잡고 있고, 외부의 도전에 직면해 끊임없이 자신을 개혁하고 변화와 쇄신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대한민국 헌법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실천적 내용 및 구체적 작동원리로 인권 존중·보장, 국민주권의 원리, 권력분립의 원칙, 책임정치의 구현, 의회제도와 다수결의 원칙, 사법권의 독립, 법치주의(행정의 합법률성 확보), 복수정당제와 정당활동의 자유, 민주적 선거제도와 평화적인 정부 구성(정권교체 가능성 인정), 사유재산권의 보장, 시장경제질서 및 자유경쟁의 원리, 헌법보장제도(위헌정당 해산 등 헌법재판소에 의한 자유민주주의 보장 장치) 등을 명시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유지·발전시키려면 무엇보다 ‘인간 존중’의 풍토와 반대파의 입장을 헤아리는 정치문화를 만드는 게 긴요하다. 자신의 생각과 자기 진영만 옳다는 아집과 독선에 빠져서는 안 된다. 다수결의 원칙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다수의 횡포를 배격하고 소수파의 입장을 배려해야 한다. 법의 지배(rule of law) 혹은 법치(法治)의 확립 또한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자유민주주의는 포용과 관용을 특징으로 한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와 양립가능한 이질적 요소들을 최대한 포용하려 한다. 하지만 자유민주 질서 하에서 보장되는 자유를 악용해 자유(민주체제)를 위협할 경우, 이것마저 용납하지는 않는다. 곧 자유민주주의는 방어적 민주주의(defensive democracy)를 그 내포로 한다.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제도화한 ‘바이마르 헌법’하에서 히틀러의 나치즘이 발호한 것을 뼈저리게 반성한 결과이다. 이런 맥락에서 ‘자유의 적’을 경계하고 발본색원하는 일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우리 헌법에 근거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가 설치돼 있다. 헌법재판소, 국가정보기관 및 안보수사기관(국가정보원의 국가정보조사국과 방첩국, 국군방첩사령부,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국 포함)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관련 법률로는 헌법재판소법, 국가보안법, 국가정보원법, 형법(특히 간첩법 조항), 보안관찰법, 보안업무규정, 방첩업무규정, 국가사이버안전관리규정 등이 있고, 관련 제도에는 대통령의 국가긴급권(헌법 제76-77조), 위헌정당 해산제도(헌법 제8조 제4항 및 제111조 제1항 제3호), 위헌법률 심사제도(헌법 제111조 제1항 제1호), 탄핵심판제도(헌법 제111조 제1항 제2호), 이적단체 지정(국가보안법 제7조 제3항 참조) 등이 있다.

 

Ⅳ. 한국 헌법의 기본원리와 법치주의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원리는 학자마다 다소의 견해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① 국민주권의 원리, ② 법치국가의 원리, ③ 복지국가의 원리, ④ 문화국가의 원리, ⑤ 국제평화주의의 다섯 가지로 집약된다. 이 중에서 법치국가의 원리는 기본권존중주의, 법치주의와 권력분립의 원칙 등을 아우른다.

법치주의란 본래 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거나 국민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려 할 경우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제정한 법률로써 행하여야 한다는 원리를 말한다. 그런데 독일의 나치즘을 겪은 후 인류는 법치주의에 대한 반성을 하기에 이른다. 히틀러의 영도자적 독재가 가능했고 2차 대전의 참화가 일어났던 것은 수권법(授權法) 등 나치 체제하의 독일 연방의회가 제정한 일련의 법률들 때문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국회 입법’이라는 형식과 절차가 중요한 게 아니라 법의 내용이 인권과 정의, 인간의 이성과 자연법 등에 합치해야 비로소 법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관념이 전후(戰後)에 등장하게 되었다. 이를 ‘실질적 법치주의’라고 한다. 반면 종래의 법치주의는 ‘형식적 법치주의’로 규정되고 있다.

최근에 와서 한국의 법치주의가 형식적 차원에 머물러 있다거나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Ⅴ. 한국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5대 과제

 

한국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과제로는 다음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견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회의 독주나 전횡(특히 포퓰리즘 성격 혹은 정부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법률안 제출 및 예산안 편성)도 헌법의 틀 내에서 적절히 통제되어야 한다.

둘째, 헌법과 법률의 해석·적용은 결코 진영(陣營) 논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국가이념)와 시장경제질서를 존중하고 이에 합치하는 것이어야 한다.

셋째,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헌법보장기관인 헌재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헌재 재판관이 자신을 추천한 정당의 입장을 헤아리기보다는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충실해야 한다.

넷째, 국회를 구성하는 여야 혹은 다수파와 소수파는 자신은 ‘절대 선, 무오류’라는 도덕적 절대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헌법정신에 입각해 상대방을 용납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해야 한다.

다섯째, 국회는 자율권을 최대한 발휘해서 ‘정치의 사법화’를 최대한 줄이는 동시에, 법원도 정치권을 의식하지 말고 공명정대한 판결을 내림으로써 사법권의 독립을 지켜내야 한다.

정치 논리를 앞세워 헌법과 법률을 자의적으로 해석·적용하면, 반대파는 결코 그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법치주의가 훼손되고 경시되는 현상을 계속 방치하면, 사회적 약속인 법의 존중 풍토가 사라지게 된다. 그럴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려는 국민적·사회적 노력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제 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