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8 (수)

  • 구름많음동두천 27.1℃
  • 흐림강릉 24.9℃
  • 구름많음서울 30.2℃
  • 천둥번개대전 24.9℃
  • 흐림대구 28.8℃
  • 흐림울산 26.6℃
  • 맑음광주 28.7℃
  • 흐림부산 28.8℃
  • 구름조금고창 25.9℃
  • 구름조금제주 29.7℃
  • 구름많음강화 25.6℃
  • 흐림보은 23.4℃
  • 흐림금산 24.1℃
  • 구름조금강진군 27.6℃
  • 흐림경주시 26.4℃
  • 흐림거제 27.8℃
기상청 제공

자유마당

한국 전쟁의 영웅들은 어쩌다 친일파가 되었나?(2)

                                                                                                                     <사진출처 뉴스1>

 

 

두 번째 이야기 : 백선엽이 간도특설대에서 조선인 독립군을 무력탄압했다고?

 

지난 1편에서 민족문제 연구소가 정한 친일파 분류의 일반적 기준은 군인의 경우 소위 이상의 장교로, 백선엽 장군에 대해서는 이에 더해 만주의 간도특설대에서 항일세력을 탄압하였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아래 참조)

 

상기 분류 기준 중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항일세력을 무력 탄압했다는 문구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일세력을 조선인 독립운동 단체를 의미한다고 여길 것이다. 이런 인식으로 인해 백선엽 등 만주국 소속으로 활동한 부대원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조선인 독립운동가를 무력 탄압한 친일파라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이 항일세력이 누구인지? 어떤 성격의 조직인지?를 가리는 작업은 백선엽의 친일파 여부를 판단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므로, 당시 만주에 존재했던 항일세력의 실체 등을 포함한 만주의 상황, 대표적인 항일운동 단체인 동북항일연군의 성격, 그리고 백선엽 장군의 간도특설대에서의 역할과 항일세력과의 연관성 대해 알아 보고자 한다.

 

1930-1940년대의 만주

 

민족문제 연구소가 백선엽 장군의 만주에서의 행위를 들어 친일파로 분류한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선 당시 만주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며, 특히 중요한 것은 만주에 존재한 항일세력의 실체이다.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고, 진정성을 충분히 담보할 수 있는 김구의 백범일지를 인용하여 당시의 만주의 상황을 요약 정리하였다.

 

당시 임시정부 주변에는 공산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자들과 순수 독립운동가들인 민족주의자가 대립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은 레닌이 활동자금으로 제공한 공작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사건 등의 전모가 드러나자 이 사건의 주모자인 이동휘(임시정부 총리, 공산주의자) 총리직을 사임하고 러시아로 도망쳤고, 나머지 공산주의 계열의 사람들은 모두 만주로 도주하였다.

 

이들 공산주의자들은 만주로 도주한 후 자유시 참변 이후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조선인 독립운동 단체를 모략으로 괴멸시켰으며 김좌진 장군 같은 청산리 전투의 영웅들까지 암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나아가 공산주의자들은 만주에 기거하는 조선인들로부터 독립운동을 빙자하여 자금을 갈취하는 등 마적 행위를 서슴치 않아 동포들의 원성을 자아내는 일이 비일비재하였고, 동포들은 그들을 일본 경찰에 고발하는 일들이 자주 발생했다.

 

백범은 만주의 상황을 전하는 말미에 그러다 왜()가 소위 만주국이란 것을 만드니, 우리 운동의 최대근거지였던 만주에서의 활동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고 결론짓고 있다.

 

정리하면, 당시 만주에는 공산주의자들의 유입으로 순수한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은 거의 괴멸되었고, 단지 공산주의 사상을 지닌 일부 마적과 같은 사람들 뿐이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일본이 만주국을 만든 1931년 이후에는 조선인 독립운동가의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였다하니 1943년 만주에 부임한 백선엽과 조선 독립운동 단체와는 아무 관계가 없음이 명확하다 하겠다.

 

김구는 백범일지를 두 권의 책으로 나누어 작성하였다. 그중 상권은 53(1929)에 상해 임시정부에서 어린 아들들에 자신의 행적을 남기기 위해서, 하권은 63(1943)에 중경의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 당시의 각종 사연들을 중심으로 작성된 것이다. 이 중 만주지역과 관련된 이야기는 백범일지 하권의 첫 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만주의 대표적인 항일단체인 동북항일연군의 실체

 

민족문제 연구소가 언급한 백선엽이 탄압한 항일 무력 단체 중 가장 대표적인 조직이 동북항일연군이며, 이 조직은 소련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중국 공산당 소속의 항일 단체이다. 당시 소련은 동부전선에서 독일과의 치열한 전투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서부(만주, 시베리아 등)에서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이런 이유로 소련은 일본이 자신들의 배후(서부)에서 공격하지 못하도록 중국공산당으로 하여금 일본과의 게릴라전을 전개하도록 지원하였다.

 

만주에 거주하던 공산주의 조선인들이 바로 이 조직에서 대거 활동하였으며, 이들이 조직에 가담하기 위해서는 중국 국적을 취득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의 신분은 모두 중국인이었다. 혹자는 이들이 비록 중국 공산당의 일원이었지만 항일투쟁을 통해 조선 독립에 기여한 것처럼 주장하지만 동북항일연군의 행동강령을 보면 이런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알 수 있다.

 

동북항일연군의 행동강령

1. 반만항일(反滿抗日)로 동북실지(東北失地) 회복, 중화(中華)조국의 옹호

2. 일적(日賊) 주구의 재산 몰수

3. 민중과 연합하여 항일구중국(抗日救中國)

 

위 행동강령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동북항일연군은 결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존재한 조직이 아니고, 오직 중국의 이익과 공산주의의 확산을 위해 일본과 맞붙어 싸운 중국 공산당 조직이다. 이렇게 조직된 동북항일연군은 1939년 일본군과 만주군의 대대적인 소탕작전으로 1941년 경에는 거의 전멸 수준에 이르렀고 남은 500여 명은 소련령()으로 도피하여 제88특별여단(교도 여단)에 편입되었다. 이들은 해방 후 북한의 당이나 군의 요직을 차지하였고, 반대파들을 숙청하여 북한의 권력을 장악하였으며, 대표적으로 김일성, 김책, 최현, 최용건, 오진우, 리을설, 최광 등이 동북항일연군 출신이다.

 

이들은 한 때 3만 명이 넘는 거대한 조직으로 소련의 지원을 받아 중국을 위해 대일(對日) 게릴라 전을 전개하였으나 일본군과 만주군의 소탕 작전으로 거의 소멸되었고, 남은 조직원들은 마적 집단으로 변신하여 만주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에게는 가장 귀찮고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이런 사실은 함석헌(1901년생, 호는 씨ᄋᆞᆯ, 민중운동가)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서도 등장한다.

 

 

 

 

간도특설대(間島特設隊)와 백선엽

 

민족문제 연구소가 백선엽을 친일파로 분류한 이유 중 하나가 조선인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 장교로 근무한 이력을 문제 삼았는데, 이 부대가 바로 앞에서 설명한 동북항일연군을 소탕하는데 동원된 부대이다.

 

간도특설대는 일본 제국의 괴뢰국인 만주국에 의해 동북항일연군 등 중국 공산당 휘하의 조직을 토벌하기 위해 1938년 조선인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1939년부터 본격적으로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1941년 경에는 동북항일연군은 거의 소탕되었다. 민족문제 연구소가 만주에서의 백선엽의 활동을 문제 삼고 있지만 백선엽의 부임은 19432, 백선엽이 만주에서 항일 세력을 무력으로 탄압했다는 주장은 그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일부에서는 백선엽 장군이 일본인 작가와의 인터뷰(아래 참조)에서 동포에게 총을 겨눈 사실을 인정하였음을 들어 친일파라고 선동하고 있지만, 백선엽이 언급한 동포는 같은 조선인을 괴롭히는 마적을 의미하는 것으로 치안 유지를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는 것이 팩트이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당시 만주에는 대륙 침략의 야욕을 버리지 못한 일본과 공산주의 확산을 시도하는 소련 및 중국 공산당 세력이 맞서고 있었다. 비록 많은 조선인이 존재하였지만 자주권이 없는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오직 둘 중 하나, 일본 또는 중국 공산당 뿐이었다.

 

이런 제한된 선택권만이 존재한 상황에서 일본을 선택했다고 친일파라고 한다면 친일파가 아닌 동포가 어디 있겠는가. 또한 친일파가 아니면 나머지는 모두 중국 공산당을 선택한 공산주의파인데 민족문제연구소의 어느 누구도 동북항일연군에 소속되어 중국을 대신하여 싸우다가 세가 불리해지자 소련으로 도주하여 훗날 북한 정권 창출에 기여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파의 기준으로 제시한 무력 탄압의 대상인 항일세력의 실체는 공산주의자임이 김구의 증언이나 동북항일연군의 실체에서 확인되었다. 그나마도 백선엽이 부임 당시에는 거의 괴멸되었고 남은 병력은 소련으로 도주하였으며 만주에 남은 사람들은 도적질로 동포의 원성을 받던 자들로 오직 민중을 위해 공산주의 사상으로 물든 마적 집단을 무력 탄압한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백선엽을 포함하여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게 한 전쟁영웅들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결국 그들이 의도는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공산주의자를 옹호하며, 나아가 대한민국 내에 친공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조성하려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백선엽 장군 등을 포함한 한국 전쟁의 영웅들을 친일파로 몰아가는 그들의 선전 선동의 실태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그분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편에서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전쟁영웅들의 이야기가 이어짐.)

 

- 이종명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