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트럼프 2기 보호무역, 고조되는 세계경제의 전운
배민근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취임 3개월째를 맞으면서 트럼프 2기 관세정책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골자는 보호무역의 대폭 강화이다. 지난 1기 때 했던 것보다 강할 뿐 아니라, 대선 레이스 동안 공약했던 것보다도 한층 강력해지는 듯하다.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CA)’의 두 상대국 멕시코와 캐나다에는 25%라는 꽤 고율의 관세를, 중국에는 현재의 평균 20% 수준에서 일단 10%p를 추가로 부과하고, 그 외 다수 대미무역흑자국들에게는 상호주의 명분으로 상대국이 미국에 부과하는 만큼 미국도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철강, 알루미늄처럼 산업의 근간이 되거나 중국산 전기차 및 배터리처럼 전략산업 품목에 대한 개별적 고율 관세가 추가될 수 있다. 트럼프 2기 보호무역정책 상호관세 위주로 가닥 지난해 대선 레이스 당시 보편관세 10%와 대중특별관세 최대 60%, 상호관세 세 가지 공약과는 비슷한 듯 다르다. 우려가 컸던 ‘보편관세(universal tariff: 모든 나라에 일률적으로 관세를 부과)’라는 표현은 최근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관세를 보편적으로, 즉 모든 나라들에 대해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법적 근거를 두고는 지난해부터 갑론을박이 많다. 새로 근거법을 제정하는 일이 의회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다수당이어서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다른 정책들(불법이민 추방, 정부개혁, 감세정책 등)과의 우선순위를 고려할 때 쉽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공화당 내부에도 반대파가 있을 수 있다. 기존에 보편관세 부과의 근거가 될 수 있는 법령을 끌어와 적용하려면, 1970년대 닉슨 대통령 때처럼 한시적으로만 적용하거나 동맹국을 적성국으로 간주해야 하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결국 트럼프 2기의 관세정책은, 보편관세 기조가 머뭇거리는 틈을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 상대국이 미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만큼 미국도 부과)가 슬그머니 차지하는 형태로 추진되는 듯하다. USMCA 국가인 캐나다, 멕시코에 대해 25%로 예상 밖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트럼프 입장에서 그만큼 얻어내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당장은 불법 이민자와 펜타닐 마약이 미국 유입을 차단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내년 USMCA 개정 협상에서는 3국 간 무역과 투자와 관련해 훨씬 강화된 미국 우선적 조건들을 내걸면서 높아진 관세율 인하와 연계하려 할 것이다. 중국에 대해서는, 지금은 10%p이지만 앞으로 점진적으로 추가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EU, 일본, 대만 등 여타 국가들은 우선 상호관세 장벽에 직면하게 될 전망이다. 문제는 상호관세에서 ‘상호적’이라는 기준이 생각만큼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더군다나 미국이 적용세율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트럼프의 인식이 실제 상황보다 우선시될 수도 있다. 일례로 지난 3월 4일 트럼프 대통령이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한국의 평균 관세율이 미국보다 4배 높다”고 언급했다. 이는 양국 간 무역협정이 없는 일반적인 WTO 회원국에 대해 적용되는 우대 관세율(최혜국 대우 실행세율, MFN applied rate)이, 우리나라의 경우 13.4%, 미국은 3.3%(2024년 기준)인 것을 가리킨 것으로 여겨지나, 실상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된 상태로 우리나라는 미국에 대해 평균 0.8%가량의 실효 관세율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트럼프 또는 미 정책당국이 가진 인식과, 때로는 오해와 싸우며 바로잡는 일이 앞으로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될 듯하다. (사진 설명)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3월 20일 서울 중구 ENA 스위트호텔에서 열린 '트럼프 2기 행정부 개막과 글로벌 통상규제·분쟁 대응 전략 설명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협상과 설득의 중요성 부쩍 커지는 통상 환경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정형적, 고정적이기보다 앞으로도 계속 유동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트럼프가 관세를 전략 또는 협상의 수단으로 삼기 때문이다. 즉 트럼프는 관세를 통해 미국의 무역수지가 개선되고 조세수입이 늘어나는 효과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본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의 지렛대로 활용하고자 한다. 강경한 보호무역정책의 중요한 전략적 목표로 첫째 미국 국내 투자와 생산을 늘려 미국인의 일자리와 소득을 늘리도록 하는 목표를 꼽을 수 있다. 사실 이 같은 목표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바로 전임 바이든 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제정해 대규모 친환경 투자를 이끌어낸 것도, 한편으로는 미국 내 제조업 부흥과 공급망 안정을 목표로 한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오바마 정부 때에는 좀 더 소박한 형태로, 해외로 생산지를 옮긴 미국 기업들로 하여금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도록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폈다. 비슷한 정책 목표를 트럼프는 관세라는 수단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에 부가되는 두 번째 전략적 목표는 미국이 상대 국가에 따라 다양한 정치·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고 관철시키고자 하는 데 있다. 앞서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 불법 이민자와 펜타닐 마약 유입 차단에 적극 협조하라는 요구가 이 같은 사례에 해당한다. 중국에 대해 외국 기업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전반적으로 개선시키도록, 예를 들어 기업 보조금을 중단하고 직간접적인 기술이전 강요를 중단하도록 요구하고 이를 중국 정부가 수용하는 경우 관세율을 인하해주겠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 EU 같은 동맹국들에 대해서는 국방비 지출을 늘리고 미군 주둔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는 한편, 미국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더 많이 구매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 같은 일들이 상당수 관세율의 인상 및 경감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며 협상 테이블에 오르게 될 것이다(<그림 1> 참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국들, 무역전쟁 확전 가능성도 배제 못해 상대 국가들의 반응은 만만치 않다. 지난해 예상한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크게 보아, 미국의 무역 상대국들은 대체로 트럼프 정부의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내다보는 시각이 많았다. 미국과 그 외 국가들 간의 경제력 불균형이 코로나 이후 더욱 심화되는 상황에서, 어느 수출국이라도 미국이라는 세계 최대의 시장을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어느 정도 감내 가능한 정도까지 관세를 올리더라도 그대로 감내하면서 계속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국가나 기업 차원 모두 유리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캐나다와 멕시코에 선공을 감행했을 때에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요구가 점점 감내하기 어려운 선에 근접하면서 멕시코나 중국을 중심으로는 반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EU 국가들도 우크라이나-러시아 종전 문제를 둘러싸고 트럼프 정부와 거리두기에 나선다. 트럼프와 잘 협상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내어놓으라는 대로 다 내어놓다가는 국내 정치의 취약한 지지 기반마저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트럼프 발 무역전쟁은 당분간은 상당히 소란스러운 국면을 이어갈 전망이다. 트럼프의 공세가 1기 재임기 당시의 경험, 그리고 지난해 대선 공약을 통해 제시된 것보다 수위가 높다. 상대 국가들은 1기 때의 경험에 기반해, 협상카드를 마련해 내어줄 것은 내어주면서 트럼프 발 공세를 약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 대책을 마련했다.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지 않다. 트럼프의 보호무역 공세는 더 강해진 데 반해, 상대 국가들이 물러설 여지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대다수 국가에서 집권 여당의 지지율이 야당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서구 사회에서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이들 정부는 트럼프와 협상을 잘 이끌어야 한다는 숙제를 부여받았으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국민에게 자칫 ‘퍼 주기’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는 제약을 강하게 받고 있다. 트럼프 보호무역정책은 고율 관세에 그치지 않을 것 트럼프 2기 정부가 추진하는 높은 수준의 관세와 국가별 협상은, 그 자체로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손익을 과거보다 훨씬 꼼꼼하게 따지겠다는 의미로 다가오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세계 경제와 미국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미국 조야의 기대와 염원이기도 하다. 1980년대 말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권 해체 이후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유일 강대국으로 발돋움했으나, 패권국가로서 지게 되는 부담의 증가와 중국경제의 부상이 미국 사회의 속을 약하고 병들게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이에 따라 무역 관계를 비롯해 국제기구를 통해 만들어낸 규범, 다른 나라에 대한 원조, 국제사회의 평화를 유지시키기 위한 접근방식 등을 모두 새롭게 설정하려 하고 있다 (<그림 2> 참고). 물론 트럼프가 단기적으로 좌절할 가능성도 없진 않다. 정책 추진의 성과가 미진하거나, 인플레이션 같은 부작용이 크게 확대되면 내년 말 중간선거가 복병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젊은 부통령 밴스를 내세운 의미는 지금 추진되고 있는 MAGA 운동이, 단지 트럼프 개인의 캐치프레이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긴 시간에 걸쳐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흐름임을 시사한다. 중간선거 이후 그리고 트럼프 이후 집권하게 될 어떠한 정치세력도 이 같은 요구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울 것이다. ‘대한민국호’ 정치안정과 산업 경쟁력 회복 절실 ‘대한민국호’의 좌표와 방향이 중요한 것도 이 같은 예사롭지 않은 시대적 배경 때문이다. 트럼프의 관세장벽은 세계무역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고, 그에 따라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크게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메인 타깃이 중국이라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 될지 모르나, 그러한 기회를 살리는 것도 역량과 준비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미국 이외의 시장을 놓고 벌이는 국가 간, 기업 간 각축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중국도 트럼프가 미국 시장의 장벽을 높이는 것에 순순히 당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유럽, 인도, 중남미, 아프리카 등에서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대미 협상의 장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아울러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을 강화하기 위해 국내의 정치적 난맥상이 하루빨리 해소되고 안정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