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 선동가들의 특징 중 하나가 ‘언어와 어휘 선택에 탁월하다’는 것이다. 이승만을 비난하는 사람들 역시 이런 특기의 소유자로 이승만에게 ‘분단의 원흉’ ‘친미 사대주의자’ ‘친일파’에 이어 ‘런승만’이라는 누명을 씌워 마치 대통령이 국민을 버리고 혼자 살자고 도망한 인물로 매도해 버렸다. 각박한 세상에 굳이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고자 하는 노력조차 버거운 사람들에게는 ‘런승만’이라는 별칭 하나로 이승만은 그런 인물이 되어 버렸다. 그들이 이승만을 비방하기 위해 지어낸 ‘런승만’이란 ①‘국민을 내버려두고 서울을 벗어나 피난했다’는 것과 ②‘자신은 피난을 가면서 국민들에게는 서울이 안전하다고 육성 방송을 했다’는 것, 그리고 ③‘한강 인도교 조기 폭파로 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승만에게 씌워진 ‘런승만’의 누명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3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① 대통령이 서울을 떠나 피난 한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나? 각종 기록에 의하면 대통령이 북한의 남침을 처음으로 보고 받은 시간은 6월 25일 10시 30분 신성모 국방부 장관으로부터였다. 처음 대통령은 서울 고수를 고집했지만 일부 각료와 프란체스카 여사의 간곡한 권유로 27일 새벽
이승만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이승만의 ‘친미 사대주의’로 인해 대미 관계가 외교적 상도(常道)를 벗어나 맹목적·종속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비난한다. 한편 이승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친미(親美)가 아니면 북한처럼 친소(親蘇)를 했어야 했는가? 라는 반문과 함께, 이승만의 대미외교는 단순한 친미(親美)가 아니라 용미(用美)였으며, 어느 누구보다도 미국에 당당히 맞섰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극단적으로 갈라진 양측 주장에 대해 ① 건국 당시 이승만의 친미 정책은 잘못된 것인가?와 ② 이승만은 과연 ‘친미 사대주의자’인가, 아니면 ‘용미 실용주의자’인가?라는 두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① 건국 당시 이승만의 ‘친미’ 정책은 잘못된 것인가?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로 불릴 정도로 인류와 전쟁은 뗄라야 뗄 수없는 관계이다. 어떤 역사가(歷史家)는 전쟁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생존 투쟁의 일부이기에 인류가 존재하는 한 필연적이라 주장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나라들은 자국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전쟁에 대비하였고,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 방법 중 하나가 동맹의 선택이었다. 유럽의 역사에서도 영국과 프랑스는 100년 전쟁을 치를 정도로 앙숙이었지만 독일이라는 공
한국과 미국이 나토(NATO)정상회의참석차 마련된 양자회의 시에 결정한 ‘일체형 확장억제체제’의 합의는 북한이 핵 공격을 할 시엔 즉각적이고 압도적, 결정적인 대응 보복을 위한 두 국가의 고뇌(苦惱)에 찬 결단이다. 한·미간에 합의한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이 핵이 없는 국가로서 미국과 역사상 처음으로 양자합의를 한 것 자체도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한·미간에 정보공유를 확대, 보안 절차 및 통신체계를 구축하고, 두 정상간의 즉각적인 협의를 보장할 절차와 체계를 정립하며,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를 통합하는 공동 기획 및 핵 억제 심화 교육을 시행 추진함과 동시에, 핵과 재래식 무기를 통합하는 방안을 적용하는 연습과 훈련을 통하여 동맹의 태세와 능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한다는, ‘워싱턴선언의 핵협의 그룹(NCG)’의 논의한 내용보다는 진일보(進一步)한 내용이 담기었다. 이것은 ‘일체형 확장억제 체제의’ 마련으로 미국이 핵을 운용할 시에 한국군의 긍정적인 역할이 있음을 명문화한 매우 중요한 합의라는 생각이다. 한·미간에 북의 핵 작전이 현실화될 시에 마련된 이 번의 합의는 매우 중요한 안보의미를 갖고 있다. 북한의 핵
해방 직후 소련의 사주를 받은 조선노동당의 최대 현안은 소련의 영향권을 벗어난 임시정부나 위원회 등과 같은 조직이 남한에 구성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남한 단독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1948년 1월 남북한 총선를 통해 한반도 통일 정부 구성을 추진할 목적으로 서울을 방문한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활동 시기부터 남한 단정 수립을 주장하는 세력을 친일반역도로 매도하기 시작했다. 비판에 앞장선 세력은 말할 것도 없이 이승만의 정읍 선언을 비판한 세력과 동일한 남북한의 노동당(공산당)과 그 주변세력으로 그들의 최종목표는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 방해와 전 한반도의 공산화였다. ‘친일 프레임’은 오랜 기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형성된 반일 감정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 것이었으며, 이들이 내세운 주장 중 대표적인 것이 ① 북한애서는 완벽한 친일 청산이 이루어졌으나 ②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주도하여 건국되었고, ③ 친일분자들을 앞세워 대한민국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하여 제거하였다는 것이었다. ① “북한에서는 완벽한 친일 청산이 이루어졌다”? 북한이 친일 청산에 적극적이었다는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사진제공: 뉴스1> 북한이 5월 28일부터 6월 9일까지 4차례에 걸쳐 남한 전역에 오물풍선을 살포했다. 오물풍선 살포 기간 중에 서북 도서 일대에서 GPS 전파 교란을 했고 5월 30일에는 김정은 지도하에 이동식발사대(TEL) 18대가 각기 1발씩 600미리 방사포(KN 25)를 동해 방향으로 일제히 쏘아 올리는 ‘위력시위사격’을 실시했다. 북한이 이런 도발을 한 결정적인 이유는 5월 27일 발사에 실패한 ‘정찰위성’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2번의 실패 끝에 세번 만에 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지구 궤도에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고무된 북한은 2024년에 3기의 정찰위성을 추가로 발사하겠다고 공언했다. 북한 주민들의 기대도 컸다. 그런데 1년의 반이 다 지난 시점에 쏘아 올린 정찰위성이 발사 2분 만에 폭발해 버렸다. 이에 북한은 뒤숭숭한 국면을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내부 단속이 필요했는데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었다. 마침 한국의 탈북단체가 정찰위성 발사 10여 일 전에 김정은 가계도 등을 포함한 전단, 한국의 발전상, K-팝, 트롯 가요 등을 담은 USB, 그리
24년 만에 북한의 평양을 방문하는 푸틴의 행보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연 두 독재자는 과거의 『조·러우호조약』수준의 ‘상호군사방위조약’을 복원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진 시점이다. 대세론적인 분석은 아마도 북러는 ‘준동맹관계’로 격상되는 구조물 속에다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많은 내용물들을 채울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푸틴은 김정은에게 북한이 그 동안에 러시아에 제공한 무기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비롯하여 경제협력·문화교류부분으로 협력의 고리를 확장하는 공동성명을 만들 것이다. 최근에 푸틴 대통령이 북한의 노동신문에 기고한 내용을 살펴보면 그의 행보에 대한 분석을 할 단초가 보인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북한이 우크라이나에서의 러시아 특수군사작전을 굳건히 지지하고 우리와 연대성을 표시하며 유엔무대에서 공동노선과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높이 평가 -러시아는 자주와 독창성, 발전의 길을 자체로 선택하려는 권리를 지키는 투쟁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조선인민지지 -우리는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호상 결제체계를 발전시키고 일방적인 비합법적인 제한 조치들을 공동으로 반대해 나갈 것 -유라시아에서의 평등하고 불가
2024년 초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었던 영화 중 하나가‘건국전쟁’이었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많은 영화인들은 건국전쟁의 흥행에 대해‘보수적 관점에서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성공할 수 없다’는 그간의 속설을 잠재운 일종의 영화계의 기적이라 평한다. 또한 이러한 기적에 더해, 영화의 엔딩 자막과 함께 전 관객의 박수가 터져 나오는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기억은 참으로 감동 그 자체였다. 대부분의 관객이 감동의 순간에 동참했던 이유는 그동안 대한민국 건국의 주인공인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오해와 폄하에 동조(?)한 미안함과 회한도 함께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한국자유총연맹 강석호 총재가 지난 3월 26일 '이승만 건국 정신 계승 국민대회'에서 "공산주의의 온갖 방해 공작에 맞서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립 시켜준 자랑스러운 건국 대통령을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고 밝혔듯이 우리 필진 역시 반성과 미안한 마음을 담아 이승만과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대표적인 다섯 가지 주제에 대해 연속 기획 시리즈로 진실에 다가가고자 한다. - 편집자 주 - ① 이승만의 ‘정읍선언’, 한반도 분단의 원인인가 ? ②
이미지제공: 클립아트코리아 북한에는 인터넷이 없다. 국제사회가 인공지능(AI)과 반도체・기후변화 등 첨단과 미래를 향해 내달리고 있지만 거의 유일한 불모지로 남아있는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1000km 떨어져 외부와 차단된 생태계를 보여주는 갈라파고스섬과 같은 존재가 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의 주요 기관・시설의 서버를 털어가거나 국제 금융망을 해킹했다는 북한 관련 뉴스가 심심찮게 들리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주민들에게는 외부와의 접근이나 컴퓨터・인터넷을 철저하게 차단하면서도 특정 목적으로 선발하고 길러낸 인력을 동원해 정권 차원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선택과 집중을 해 공략하거나 도발하는 김정은 체제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터넷 선진국 한국에 일찌감치 해킹 마수 뻗어 북한은 2000년대 들어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사회가 된 현실에 일찌감치 주목했다. 특히 한국이 초고속통신망 등을 선도적으로 구축함으로써 군사 및 첨단 산업 정보와 금융망이 그물망처럼 짜여진 데 착안해 해킹을 통해 이를 탈취하려 시도했다. 가장 먼저 손을 댄 건 청와대(현 대통령실)와 국방부・합
지난 27일 서울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한 ‘한·일·중 정상회담’의 성과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앞으로 후속 조치를 어찌 취하느냐에 따라서 최후의 성패가 좌우될 전망이다. 결국 중국의 리창 총리는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담론만 설파했다. 중국이 필요로 하는 경제적인 분야에서의 협력만을 강조하는 ‘절름발이식 접근법’으론 과거 시진핑 주석취임 이전의 한·중관계로 회귀하기에는 어렵다는 판단이 든다. ‘중국공산당(CCP)의 진정성’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결정변수로 되어있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미·중간의 패권경쟁이 新냉전구도속으로 굳어지고 있는 현실속에서는 더욱더 한·중관계의 다른 변수들이 종속변수로 전락하면서, 변수 외의 비군사적인 분야에서의 협력 고리만 더 강화할 수 있는 한계성을 갖고 있는 모습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3국이 협력해야 할 사안(事案)들이 복잡해지고 있는 국제정치의 현실도 인정해야 한다. 한·일·중의 안보협력 공통 분모를 찾는 모습이 매우 힘들어 보이는 와중에서도 한·중간에는 아직은 협력의 공간이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측면서 많이 존재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양자가 외교 및 통상협력체의
지난해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 이후로 첫 번째 스승의 날이 지나갔다. ‘교권 5법’이 통과되고 “학생인권조례”의 수정 요구 등 많은 풍파가 지난 후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는 시기에도 아직 추락해 있는 교권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스승의 날이 차라리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와, 스승의 날 대신 석가탄신일로 주간 학습 안내를 채우기도 한다. 스스로 대충 떠나보내는 우울한 스승의 날이다. 왜, 언제부터 교사와 학부모는 이토록 잠재적 적대성을 지닌 관계가 되었을까. 왜 교사의 역할은 이리도 작아 진걸까?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던 제자들은 이제 직접 밟기도 한단다. 너무나도 많은 공론이 오가는 와중에 정답을 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하는 필요함은 절대적이다. 따라서 중점적으로 원인이 된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의 주제에 대하여 말해보려 한다. “학생인권조례”의 기준점의 방대함과 적용의 모호함 “학생인권조례”라 함은 학생의 존엄과 가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제정된 목적성을 갖고 생겨났다. 이 자체로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 학생인권조례의 적용성이 지방자치단체와 시도교육청마다 시행 유무가 다르고, 조례